[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22회

우주 저 편에서

등록 2006.06.09 17:03수정 2006.06.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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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 됩니까? 대체 대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회의 중에 있었던 일을 짐리림이 분노에 차 말하자, 그의 조수인 에질 역시 크게 화를 내며 분에 이기지 못하겠다는 몸짓을 해 보였다.


-그거 모르십니까? 아누가 골수 환경당원이라는 사실을?

아누의 배경에 대해 알고 있는 일레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일레는 짐리림의 일을 도우면서 한편으로는 탐사선의 물자를 담당하는 대원이기도 했다.

-그거야 하쉬에서나 가당한 일이지요. 가이다의 정체 모를 생명체에게까지 그런 환경주의를 적용해야 할까요?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며 여기까지 온 목적을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에질의 말에 짐리림은 네 손가락을 꽉 오므렸다.

-애초 이 탐사지역은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 지역이었지. 그런 지역에 아누와 나를 보낸 이유를 아나?


에질과 일레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짐리림이 이미 그들이 짐작하고 있는 얘기를 구태여 확인시켜 주었다.

-아누는 극단적 환경주의자였지만 난 극단적인 환경 개척주의자였지. 운석덩이나 다름없는 하쉬의 위성인 아다이호를 파괴하기 위해 난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했지만 아누와 다툼만 벌였을 뿐이야. 아누는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한 환경의 그 어떤 부분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융통성 없는 작자였어. 아누와 나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 급기야 다른 이들도 둘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어.


위원회는 분명 아누와 내가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보고 탐사 지원 순위를 조작해 탐사명령을 내린 것이야. 아누 같은 작자와 같은 탐사선에 탈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젊은 날의 객기로 탐사지원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탐사명령이 떨어진 것을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원......

짐리림의 말이 끝나자 에질이 일레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렇기에 사실은...... 일레,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 도움이?

일레는 짐리림과 에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곳의 승무원은 우리를 제외하면 38명이지만 우리의 뜻이 제대로 전해진다면 아누를 비롯한 몇몇 대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의 뜻에 따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지침에 따르면......

짐리림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내뱉었다.

-그 놈의 지침 지침! 우리의 고향 하쉬는 머나먼 곳에 있고 그런 결정을 내린 위원회의 늙은이들은 지금쯤 한줌 재로 돌아가 있겠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자들은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융통성 없는 지침도 바꾸었을 거야! 이 탐사선의 승무원들도 지침이 현실에 맞지 않는 다는 것쯤은 깨달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말이야, 일레 자네는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되네.

짐리림은 커다란 녹색 눈을 번뜩였다.

-무기고를 열어주게.

일레는 짐리림의 말에 몸 한가운데에 위치한 순환기관이 멎는 듯 했다.

-그, 그건......

-저 고집불통 아누가 설득을 한다고 해서 내 얘기를 들을 리 만무하지. 게다가 그 주위에 있는 구데아와 에아는 어떤가? 아누와 똑같은 작자들이 아닌가?

일레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뛰어나가 이 사실을 아누에게 알린다고 해도 짐리림과 에질이 어쩌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레 역시 아누의 결정이 못 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누의 결정대로 탐사가 진행되면 우리는 다시 기약 없는 머나먼 여정에 돌입해야 할거야. 그 점은 장담할 수 있어. 그렇게 하고 싶나? 난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가 남긴 우리의 후손들을 저 행성에 안착시키고 싶다네.

고향에 두고 온 친구와 가족은 어차피 만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이 발견한 행성에 정주해서 고향별 하쉬에 연락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생명계를 파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다시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머나먼 여정에 또 다시 돌입한다면 탐사선의 하쉬행성인들은 언젠가 쓸쓸히 영원한 고독을 안은 채 우주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에질의 말에 일레는 드디어 마음을 굳혔다.

-좋습니다. 무기고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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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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