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옥계수, 그리고 산목련의 매혹적인 향기

[여행] 자연의 생기가 터져 나오는 지리산 칠선계곡, 한신계곡, 의탄교

등록 2006.06.14 21:53수정 2006.06.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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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백무동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지리산 영봉들

백무동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지리산 영봉들 ⓒ 최성민

녹음이 절정에 이르고 그 푸른 물이 뚝뚝 배어나는 숲 속에서는 새끼를 잘 길러낸 꾀꼬리와 뻐꾸기 소리가 한창 구성지다. 녹음 속을 뚫고 쏟아져내려오는 옥계수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면서 피서객들을 안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산 지리산, 그 중에서도 허리에 해당하는 능선들이 이어진 '백무동 - 한신계곡 - (벽소령)지리산 자연휴양림 - 의탄마을 - 칠선계곡'은 이웃처럼 붙어있어서 자동차로 한바퀴 휑 돌면서 이른 피서와 '산소 만끽'을 하기에 맞춤이다.


a 한신계곡

한신계곡 ⓒ 최성민

백무동은 한신계곡 들머리 마을이다. '들머리'라고는 하지만 백무동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으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꾸불꾸불 지리산 허리를 20분 이상 기어올라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찻길이 잘 닦여 있어서 신나는 드라이브길이지만 밤에 불을 밝힌 마을을 멀리서 보면 하늘에 별이 떠있는 것 같다. 마치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 지역의 어느 산마을 풍경을 연상케 한다.

찻길은 한신계곡의 생명력 넘치는 녹음과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눈요기하면서 가도록 돼 있어서 드라이브 자체가 웰빙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백무동 마을엔 지금 각종 펜션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한신계곡은 지리산의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 협곡에서 만들어져 가네소 폭포를 지나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험준한 지형상 원시림이 자랑이다.

여름철이면 싱그러운 녹음과 시리도록 맑은 물줄기로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고, 늦가을이면 낙엽과 단풍물결로 만추의 서정을 빚어내 찾는 이를 감동케 한다. 또 겨울이면 빙벽과 설벽을 만들어 모험을 즐기는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a 산목련이 핀 벽소령 지리산자연휴양림 계곡

산목련이 핀 벽소령 지리산자연휴양림 계곡 ⓒ 최성민

백무동에서 나와 이웃 벽소령 쪽으로 올라가면 또다른 지리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곳엔 우리나라 자연휴양림 가운데 숲이 가장 울창하고 폭포와 계곡도 최고 수준인 지리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지리산 자연휴양림을 걷는 일은 지리산을 등반하는 일과 같다. 휴양림 곳곳에 유럽 펜션을 본뜬 각종 방갈로가 놓여있다. 또다른 특징은 지리산 주봉들에서 늘 옥계수가 힘차게 흘러내린다는 것.


계곡가에는 각종 야생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금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산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새하얀 꽃도 청초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향기가 환상적이다.

a 산목련

산목련 ⓒ 최성민

a 산목련 꽃봉오리

산목련 꽃봉오리 ⓒ 최성민

백무동과 벽소령을 들렀다가 다시 나와 함양 마천면 쪽으로 내려가면 '의탄교'라는 그림같은 다리가 칠선계곡으로 안내한다. 진정한 여행객이라면 칠선계곡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 이 의탄교를 지극히 사랑하게 된다.

a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의탄천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의탄천 ⓒ 최성민

혼자 여행을 하다가 다리가 있으면 왠지 건너가 보고 싶어진다. 또 샛길이 있으면 그 길 끝까지 들어가 보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것이 방랑객의 건강한 정서일 것이다. 다리와 샛길은 사람이 산다는 표시이고, 오는 사람의 다리와 몸과 마음까지를 편안히 모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위한 '초대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리를 놓고 길을 닦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웬만하면 나와서 살지 그런 곳에 살겠는가. 그런데 다리를 놓는다면 그곳에 살 만한 가치가 있으니 사는 것이다.

a 의탄교

의탄교 ⓒ 최성민

그런데 여행길에서 맞닥뜨리는 '굉장한 다리'들의 대부분은 '인간적 배려' 보다는 '상업적 목적'으로 여행객들을 '단지'(관광단지, 숙박단지, 횟집단지...)까지 안내하기에 바쁠 뿐이다. 간혹 그렇지 않은 다리가 있으니 내가 올봄 눈 녹을 무렵에 만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교'가 그런 다리이다. 다리가 다리를 밀어내는 '다리불신'의 시대에 의탄교처럼 이방인을 따뜻한 자연의 품으로 불러들이는 다리를 만나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여행길에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그런 다리를 건너는 느낌은 시장한 참에 한사코 한 술 뜨고 가도록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시골 아주머니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

a 칠선계곡

칠선계곡 ⓒ 최성민

의탄교는 지리산 천왕봉이 흘려보내는 칠선계곡 아랫자락에 있다.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폭포가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3대 계곡'의 하나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개천 바닥엔 지리산에서 굴러 내려온 돌멩이들이 거무튀튀한 '세월의 옷'을 입고 쫙 깔려 있고 그 사이를 검푸른 옥계수가 황급히 긴 여정을 시작하려는 찰라 의탄교는 그것을 가로질러 의젓하게 놓여 있다.

마치 주위 경관과 더불어 약간은 다급해지고 가팔라지기 쉬운 사람들의 심성을 다독거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아니다. 의탄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러한 심리적 영향을 받으리라고 본다. 필자도 그러했으니까. 의탄교를 설계한 사람들이 그런 효과를 기대하면서 주위 자연과의 관계를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치밀한 계산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자연이 주는 영감이 자연스럽게 설계아이디어에 스며들어 갔음직하다.

a 의탄마을 아이들

의탄마을 아이들 ⓒ 최성민

의탄교에 호기심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파격적인 외모일 것이다. 의탄교는 300m 정도의 길이에 폭은 자동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틈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의탄마을 쪽으로 2/3부분에 큼직한 돔(아치)을 걸치고 있다. 그 형태가 주위의 거대한 지리산 산세에 눌려 다리가 주눅 드는 형편을 걷어내 주고 있는 것이다. 다리가 늘 당당한 풍모로 맞아주니 그 다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에도 생기가 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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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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