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취임후 처음으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한길 원내대표와 나란히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취임 열흘 만에 종합구상을 밝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거의 모든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부동산 정책과 추가성장 방안, 당청갈등 실상, 정계개편 방향 등을 두루 밝혔다.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 출범 후 잇따르고 있는 당 정책 정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중간정리에 나선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대동'하고 표현은 '소이'하다. 종합선물세트가 갖는 특성인 외화내빈 현상을 되풀이했다. 쏟아낸 말은 많지만 심층적인 얘기는 별로 없다. 여물지 않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김근태 의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반한나라당 연합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외다. 열린우리당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다른 신문을 보니 얘기가 약간 다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단순히 반한나라당 연합만으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했고,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반한나라당 연합으로만 가는 것은 부족하다"고 했다.
'반한나라당 연합'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이 같이 제시돼야 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연합은 필요하되 연합의 명분이 '반한나라당'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뭘까? 김근태 의장은 '중도실용'을 표방한 고건 전 총리에 대해 "미래비전 실현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과 추가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대안"을 꼽았다. 예의 추가성장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김근태 의장이 취임과 동시에 내놓은 추가성장론은 최대 80조원에 달하는 기업의 여유자금을 투자로 유인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 방안을 열흘 동안 얼마나 숙성시켰길래 인터뷰를 자청했을까?
추가성장론, 얼마나 '숙성'됐길래...
김근태 의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재벌의 이른바 오너라는 사람들이 국민으로부터 위탁경영을 받고 있다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부족하다. 소명의식을 요구하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대신 경영권은 보장해줘야 한다. 그것을 단순한 규제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무슨 말인가? 좀처럼 실내용에 다가서기 어렵다. 오히려 혼란스럽다.
재벌 오너에게 위탁경영을 받고 있다는 소명의식을 요구하고 제도화하는 방안은 뭔가? 달리 말하면 경영의 공공성 제고, 즉 경영의 사회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뜻이다.
이건 이미 시장이 인정하고 시행하는 방안이다. 국민이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의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고, 주식의 권리를 주주총회장에서 행사한다. 기존 경영진이 회사에 심대한 손실을 끼칠 경우 주주들이 뜻을 모아 경영권을 박탈한다. 대주주의 횡포에 맞서 소액주주의 경영감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집단소송제나 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이중대표소송제가 그 예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김근태 의장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도 뒤에 가선 다른 얘기를 했다. "경영권은 보장해 줘야 한다"고 했다. 신군부가 경영권을 강탈한 것과 같은 극단현상이 재연하지 않는 한 정치권이 나서서 경영권 보장을 강조할 이유는 없다.
현정은 회장과 '범현대가'가 벌이는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감놔라 대추놔라 할 수 없듯이 정부가 나서서 재벌의 경영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해줄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건 주주 몫이다.
혹시 집단소송제나 이중대표소송제, 더 나아가 출자총액제한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등의 재검토를 시사한 걸까? 하지만 김근태 의장은 "단순한 규제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른 경우, 즉 재벌의 산업규제를 풀어 '경영의 자유'를 확대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또한 아니다. 김근태 의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적극 개입하고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도대체 뭔가? 눈을 돌리자. 김근태 의장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흉내 내다 실패했다며 제3의 길을 주장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산업발전 전략을 추진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락가락' 김근태의 제3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