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슬프고도 아픈 밥 추억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37] 꼬리조팝나무

등록 2006.07.11 17:41수정 2006.07.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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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장맛비를 받아먹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다. 색깔도 화사한 연분홍의 꼬리조팝나무가 그것이다.

보릿고개도 넘기고 햇감자나 옥수수도 거둘 무렵이니 아무래도 살만한 계절인 셈이다. 논에서는 벼가 푸릇푸릇 올라오며 곧 벼꽃을 피우니 하얀 이팝을 가득 먹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도 아직 배가 고픈 것일까? '꼬리조팝나무'라는 이름에 들어 있는 '조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귀하면 배만 부르면 그만이다. 찬물에 된장 풀어 밥 말아 훌훌 넘겨도 배부르면 그만이다. 무슨 맛이고, 모양새가 문제가 아니라 얼른 먹고 일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고급 요리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지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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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초등학교 시절 봄 소풍을 갔다. 김밥은 고사하고 그저 맨밥에 김치 싸 가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이다 한 병에 찐 계란 두어 개만 보태지면 금상첨화였던 시절, 모두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데 한 친구의 도시락은 무지개밥이었다.

"야, 뭐 그런 밥이 다 있노?"
"이거 무지개밥이다. 먹어볼래!"

보리밥이 아닌 쌀밥이라 맛이 있었으며 형형색색의 쌀밥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하얀 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쌀이 있는 줄로 알았다.

어느 날 모심기를 돕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는 맨날 하얀 쌀만 심나?"
"그럼 쌀이 하얀색이지 뭐 다른 색이 있냐?"
"거 누구네는 무지개쌀밥도시락을 싸왔더라."
"무지개쌀밥? 아, 그거 쌀밥에다 색소로 물들인 거다."

꼬리조팝나무를 보면서 언뜻 떠오른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음식문화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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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몇 년간 제주에 살면서 느낀 제주의 음식은 상당히 투박했다. 서울 사람들처럼 아기자기하지 않고 아주 간단하다. 나물도 고사리를 제외하면 거의 나물취급을 하지 않는다. 사시사철 푸른 것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은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본 결과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음식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그렇게 척박했던 것이다.

물론 음식이 풍성하기로 유명한 전라도 지방은 개인적으로 유배지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유배당하는 양반들, 그들은 유배지에서 감옥 같은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한양 근처에만 얼씬거리지 못할 뿐 누리던 모든 것들을 누리지 않았을까? 물론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론 흠모하던 이들이 유배지에 왔을 때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는 그런 것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상상이다. 그렇다면 유배지 중에서도 상 유배지인 제주도 음식문화가 발달했어야 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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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똑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놓여져 있는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똑 같은 음식을 똑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손맛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마다 손의 온도도 다르고 그에 따라 손에 사는 균들도 다르기 때문에 김치의 경우는 손맛이 김치의 맛을 좌우한단다.

나도 저렇게 예쁜 밥 먹어봤음 좋겠다.
그러나
슬프지는 않았다.
슬픈 것이 아니라 아팠다.
해주고 싶어도
잠시 허리 필 틈도 없이 일하고 돌아온 어머니
연탄불에 밥 올리고
항아리서 된장 한 종기 푹 푸시고는
고추며 오이며 상추를 뜯어 오라 하셨다.
'에이씨, 맨날 풀이야!'
그 한마디가 얼마나 아픈 말이었는지 이제사 안다.
그래서 슬프지 않고 많이 아프다.
이젠 그렇게 예쁜 밥은 맛없다.

(자작시 '꼬리조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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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꼬리조팝나무는 7월의 꽃이다. 그가 피면 이젠 완연한 여름, 봄의 흔적은 이제 저 깊은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기저기서 가을꽃들이 필 준비를 한다. 성급한 것들은 하나둘 꽃망울을 맺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계절과 계절을 이어주는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팝나무가 하얀 눈처럼 보였다면 꼬리조팝나무는 화장을 진하게 한 아낙을 보는 듯했다. 약간은 허황된 꿈을 꾸는 아낙 같은 꽃, 그런 느낌으로 남는 꽃이다. 그래서 좋은 꽃말을 붙여주면 좋을 것은 나는 '허황된 꿈'이라고 붙여주고 싶다.

단지 눈속임이다. 더 맛나게 보여 맛있게 느껴졌을 그 예쁜 밥, 무지개 밥도 어쩌면 허상이다. 허상, 허황된 것이 제법 어울리지 않는가? 허황된 꿈은 질긴 법이다. 그래서 조팝나무가 바람만 불어도 눈발이 날리듯 떨어지는데 꼬리조팝나무는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한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없단다. 정말, 나는 아름다운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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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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