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1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13 17:01수정 2006.07.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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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여정

솟은 이상한 짐승의 손에 들린 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뒤에서는 수이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서 있었다. 자그마한 돌이라 아무리 세게 던진다고 해도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부족했지만 솟은 자신이 아닌 수이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상한 짐승은 그런 솟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히 돌을 만지작거리더니 땅에 대고서는 선 하나를 주욱 그었다.


솟은 그것을 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땅에 선을 그리는 행동을 이런 낯선 짐승이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땅에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솟에게 있어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다. 마을의 다른 이들은 솟이 땅바닥에 뭘 그리든 말든 아무런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고 이를 따라해 보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놀림감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기에 솟은 애써 자신이 무엇을 그린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고 이는 점차 은밀한 솟만의 유희가 되어갔다. 하지만 솟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상한 짐승의 손에 들린 돌은 마치 춤을 추듯이 땅바닥에서 곡선을 그리다가 다시 가지를 쳐 나가기도 하고 안쪽으로 휙 틀어지기도 했다. 솟은 이상한 짐승의 손가락 4개보다도 땅에 무엇인가를 그리는 솜씨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상한 짐승이 땅에 그려 보인 건 불확실하긴 했지만 인간을 그린 것으로 보였다.

-대체 저게 뭐 하는 거야?

수이 눈에 이상한 짐승의 그림은 땅에 의미 없는 선과 면을 그려 얼기설기 늘어놓은 것으로 보였다. 솟은 설명을 해주었다.

-저것은 얼굴, 저것은 팔, 저것은 다리

-어! 그렇구나!


수이는 금세 솟의 말을 이해했다. 수이는 허공의 별을 보며 솟이 손가락으로 별 사이를 이으며 그림을 그리던 날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상한 짐승은 돌을 다시 솟에게 내밀었다. 솟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솟! 솟도 땅에 무엇인가를 그려봐!


수이가 무척 재미있어하며 솟을 부추겼지만 솟의 손은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상한 짐승이 그린 묘한 그림의 절반이라도 따라 간다면 좋으려면 과연 생각한데로 손이 움직여 줄지 막막했다. 수이의 검은 눈동자와 이상한 짐승의 노란 눈이 솟의 손에 집중되었다. 솟은 별 것 아닌 상황에 주눅이 든 자기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서 돌을 멀리 던져 버렸다.

-수이, 잠깐만 이리로 와.

솟은 이상한 짐승을 등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이를 불렀다.

-이제 우리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여긴 위험해.

-알고 있어.

솟의 긴장한 태도에서도 수이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일족은 물론 많은 동물들이 타죽은 상황에서도 수이는 변함이 없었다.

-저 동물은 데리고 갈 수 없어. 하지만 난 다리에 상처를 입어 빨리 뛸 수가 없어. 저 동물이 계속 쫓아오면 어쩔 거야?

-해로운 놈은 아니잖아?

-먹이가 떨어지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잖아. 게다가 당장 우리가 먹이를 구하는 데에도 방해만 될 뿐이야.

수이는 그냥 놓아두자고 했지만 솟은 자꾸만 이상한 짐승의 존재가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둘의 모습을 돌아보던 이상한 짐승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이! 이봐 어디 가는 거야! 그 쪽은 위험해!

뒤늦게 수이가 그 모습을 보고서는 크게 소리쳤지만 이상한 짐승은 손을 한번 들어 보인 이후에 슬슬 제 갈 길로 가버렸다.

-우리말을 알아들은 걸까?

수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고 솟은 짧은 사이에 한결 나아진 다리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차라리 잘 된 셈이지. 저 산을 넘어가면 다른 마을이 있다고 들었어. 그리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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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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