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3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18 17:29수정 2006.07.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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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자락이 산등성이에서 넌지시 그 가느다란 손길을 내밀 때 대기에 머금어져 있는 수분은 바위에 조용히 맺혀 메마른 솟의 콧구멍을 자극했다. 선잠이 들어있던 솟은 물 냄새에 벌떡 일어나 이슬하나를 혀로 찍어 맛을 보았다.

-수이


솟은 수이를 흔들어 깨워 바위에 맺힌 이슬로 입술을 축이게 했다. 되도록 이 척박한 땅을 벗어나고 싶은 게 솟의 심정이었고 수이 역시 그러했다. 둘은 몸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일어나자마자 산등성이를 타고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숲이다!

발길을 더디게 만들던 돌무더기 길은 어느덧 보드라운 흙이 깔린 길로 바뀌었고 솟과 수이의 시야에 저 멀리 우거진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이 있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것이고 풍족한 먹이가 있다는 뜻도 되었다. 이틀 동안 굶주려 있기는 했지만 솟과 수이는 몸에서 부쩍 힘이 솟아남을 느꼈다. 숲 사이에서는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것이 있었고 그것이 물임을 솟과 수이는 금방 알아차렸다.

-솟! 저기까지 누가 먼저 뛰어가나 해보자!

수이는 솟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내리막길로 마구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기도 했지만 드디어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수이의 장난기를 자극한 것이었다.


-수이! 거기 서!

솟은 좀 더 조심스러웠다. 솟이 눈앞의 숲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오랫동안 교류를 가지지 않은 여러 마을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 외에는 없었다. 어떤 위험한 포식자가 버티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할 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수이!

수이가 숲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솟은 시야에서 놓친 수이를 찾기 위해 주위를 한 동안 헤매었다. 수이가 뛰어간 물이 있는 곳으로 가보면 될 일이었지만 솟은 당장 수이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점에만 당혹해하며 미처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이!

멀리서 날카롭고 짧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솟은 금방 수이의 소리임을 알아차렸고 무엇인가 도움을 원하는 외침임을 알 수 있었다. 솟은 수이의 소리가 울려 퍼진 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수이!

솟은 강가에 다다라서야 수이가 물을 보고 달려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었다. 그러나 막상 수이의 모습은 어디에서 보이지 않았다. 솟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수이!

순간 솟의 머리위로 커다란 돌이 지나가며 강에 떨어져 물보라를 일으켰다. 깜작 놀란 솟은 몸을 웅크리며 돌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어어이 어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돌을 던진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세 명의 건장한 사내가 손에 긴 장대를 들고 솟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솟은 일단 두 손을 내밀어 적의가 없음을 보였다. 사내들은 그에 반응하지 않고 장대를 앞으로 치켜들어 솟을 위협했다.

-난 저 산 너머에서 왔다.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보지 못했나? 난 굶주리고 힘이 없다. 도와 달라.

솟은 상대가 알아듣기를 바라며 자신의 처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사내들은 여전히 장대를 앞으로 치켜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솟을 강으로 몰아갔다.

-이러지 마! 난 너희들과 다투러 온 게...

순간 한 사내의 장대가 땅바닥을 쓸며 솟의 다리 쪽을 치고 들어갔다.

-짜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솟은 다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굽혔다. 솟이 화가 난 눈으로 노려보자 장대를 휘두른 상대는 이를 한껏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호의가 아닌 약한 상대에게 보내는 승자의 여유로움이었다. 솟은 그 모습에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솟이 소리치자 사내의 장대는 높이 치켜 올려져 이번에는 솟의 등을 후려쳤다. 솟은 ‘윽’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땅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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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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