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5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20 18:05수정 2006.07.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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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를 찾는 솟의 고함소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순간 솟을 짓누르던 사내들의 손길에서 힘이 빠지더니 솟을 놓아두고서는 서서히 물러갔다. 솟은 엎어진 상태에서 뒤로 묶인 손을 놀려 보았다. 덩굴 끈을 미처 조이지 않아서 손은 수월하게 풀렸고 솟은 그 자세에서 힘차게 몸을 뒤집었다. 사내들은 솟을 놓아둔 채 어디론가 우르르 뛰어가고 있었다. 솟은 사내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이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어이!


솟이 사내들의 뒤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 중 누구도 뒤를 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솟은 무작정 사내들의 뒤를 뒤쫓아 갔다. 다소 배타적인 그들에게 다시 접근했다가는 솟의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솟은 금방 모습을 감춰버린 수이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 서!

사내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뛰는 탓에 솟은 쉽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뒤쫓아 가던 솟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사내들이 뛰어가는 곳은 바로 솟과 수이가 넘어왔던 황무지 산 쪽이었다. 솟은 숨을 헐떡이며 황무지로 뛰어가다가 넓은 곳에 모여 우뚝 선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들 저러지?

사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꿇어앉아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솟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공포심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이유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호기심이 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솟은 사내들을 잘 볼 수 있도록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위에는 옅은 초록빛이 나는 과실이 열려 있었다.


솟은 자신이 두 밤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사실을 상기하고서는 과실을 깨어 한 조각을 씹어 먹었다. 다소 시큼한 맛이 나긴 했지만 시장기를 면하게 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솟은 또다시 수이 생각이 났다. 사내들에게 다시 소리를 질러 수이의 행방을 추궁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솟의 본능이 묘하게도 이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마도 사내들이 사는 마을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꾸역꾸역 황무지로 몰려들고 있었다. 솟은 일찍이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이렇게 많이 모여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같은 마을 사람이라고 해도 사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허다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는 사냥을 나갈 때가 유일했는데 그나마도 대게의 경우에는 열 명 내외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솟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열 명의 발가락과 손가락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황무지에 모여든 이들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 후 먼저 온 사내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들 중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까지 있었다. 순간 솟은 저들 중에 수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솟은 주르륵 나무를 타고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에게로 뛰어 갔다. 그 순간 밝은 빛이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으악!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하나하나씩 밝은 빛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놀란 솟은 빛이 쏟아져 나온 방향을 보았고 그곳에는 들소 두 마리만한 크기에 둥근 발이 잔뜩 달린 이상한 동물이 우뚝 서 있었다.

-수이!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바로 옆의 사람들이 죽어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솟은 그들 중에 수이가 있을 것만 같아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이!

-솟!

놀랍게도 수이는 그 들 사이에 있었고 다행히도 다른 이들처럼 넋이 나간 상태가 아니었다. 솟은 재빨리 마주 뛰어오는 수이를 안고 방금 전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나무위로 이끌었다. 둥근 발이 달린 동물은 계속 빛을 내뿜었고 마침내 황무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솟과 수이는 공포감에 휩싸여 나무 위에서 서로 꼭 끌어안은 채 몸을 떨었다.


이윽고 둥근 발이 달린 동물은 ‘드르륵’소리와 함께 솟과 수이가 숨은 나무로 서서히 다가왔다. 솟은 당장 도망을 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둥근 발이 달린 동물의 속도를 보니 수이를 데리고 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방법이 있다면 저 커다란 동물이 움직이기 어려운 숲으로 도망치는 것뿐이었지만 나무에서 내려가 숲으로 뛰어가기에 거리는 너무나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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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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