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85회

등록 2006.07.24 15:44수정 2006.07.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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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신복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김충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근처에 침몰한 배가 있을 것이야."

그의 말대로 근처 바다에는 배에서 떨어진 듯한 합판과 나무못, 부러진 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신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해류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 같아."

김충연은 이물로 다가가 아래쪽을 살폈다. 뱃전에 부딪쳐 오는 물보라가 더 이상 일지 않았다. 파도는 조금전 보다 높아져 있었지만, 배는 그 파도를 따라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었다.

"해류가 여기서 끝이 난 건가?"

"수시로 변하는 게 해류야.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둘은 나누어서 바다를 살피기로 했다. 왕신복은 가까운 바다를, 눈이 좋은 김충연은 먼바다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참이 지나서 김충연이 소리를 내질렀다.
"저게 무엇이지?"


그의 말끝이 올라가 있었다. 왕신복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저길 똑똑히 봐. 거무스런 활등처럼 줄이 그어져 있질 않나? 섬이 분명해."


"섬이?"

왕신복은 고개를 길게 빼어 발뒤축을 돋우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활등 같다는 섬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쎄. 내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여."

"내 원…… 저길 똑똑히 봐. 수평선을 따라 활등처럼 길게 뻗어져 있잖아."

왕신복은 이마에 손을 얹어놓고 김충연이 손가락을 가리켜 보이는 곳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렇구나. 정말 섬이야!"
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섬의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미끈한 바다를 시샘한 용왕이 바위를 떠받들어 한쪽 팔을 불쑥 내민 것 같았다. 멀리서 보이는 저곳은 꼭 한아름밖에 안 되어 보일 만큼 가느다란 바위가 사람의 키로 줄잡아 서 큰길은 되리 만큼 솟아 있었다.

"저게 무슨 섬일까?"

왕신복은 한참동안 그 섬의 형태를 살피다가 대답했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왔다면 대마도(對馬島)일 가능성이 많아. 더구나 수평선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면 대마도의 형태와도 비슷해."

그 말을 듣다가 김충연이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게 정말로 대마도라면……."

그는 반대편 난간 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왕신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충연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가 문득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내 생각대로야. 저기에 육지가 있어. 육지가 보인단 말야."

왕신복이 다가가자 정말로 육지가 수평선 위에 걸친 채 이어져 있었다. 여기서 대마도까지의 거리만큼 육지가 아득히 펼쳐져 있는 것이다.

"왼쪽으로 대마도가 보인다면 분명 반대쪽에 육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저곳은 아마 동래군일 거야. 저곳에는 태종대도 있지."

"태종대라고?"

"태종무열왕께서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순회하다가 저곳의 해안절경에 심취해 활을 쏘며 즐겼다 해서 태종대라 이름 붙여진 곳이지.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경이 장관이야."

"어쨌든 해류가 흐르지 않아 다행이야. 해류가 흘렀다면 더 남쪽으로 흘러가 유구나 곤륜국(崑崙國)에 표착 하고 말 것이야."

"문제는 이 배를 움직여 저기 육지까지 가야한다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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