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7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24 17:20수정 2006.07.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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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짐리림은 마치 퉁겨나듯이 벌떡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짐리림은 지독한 통증을 예상하고서는 크게 놀랐지만 뜻밖에도 다리가 부자연스럽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다 시피 했어. 제대로 맞추어 놓고 약을 주입했으니 잠시 동안은 움직이면 안 되네.

아누는 여전히 짐리림의 옆에 있었다. 아누는 비상식량의 포장을 벗기고서는 천천히 짐리림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자네 눈 말일세.
-......

-보이기는 하는가?
-아무것도 안보여. 대체 내 눈이 어떻게 된 것이지?

-눈동자가 하얗게 되어 버렸어.


짐리림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누가 먹여주는 식량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우가라맛이군.
-그래 우가라맛이야,


-......지금 내 모습이 어떻지? 다른 이들은?

짐리림의 물음은 매우 조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아누는 짐리림이 진정으로 묻고 싶은 바를 알 수 있었다.

-...... 그리 좋지는 않아. 지금은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얼굴에 화상을 조금 입었어. 그리고...... 난 여기 혼자 와 있네.

아누는 조심스럽게 말했고 짐리림은 짐작을 했는지 가볍게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혼자 여기 와 있는 겐가? 날 잡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잡기는 누굴 잡겠나. 탐사선을 빼앗긴 후 겨우 몸만 빼서 달아난 거야.

짐리림은 아누의 말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누가 탐사선을 빼앗았다는 말인가?

아누는 그간 있었던 얘기를 천천히 짐리림에게 해주었다.

짐리림으로 인해 탐사선이 가이다에 불시착한 이후 모든 것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틈에 짐리림 일행은 탐사선을 빠져나가 도주했고 아누는 당황해하는 대원들의 안위를 점검한 후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탐사선을 수리하라. 달아난 자들은 애써 쫓을 필요가 없다. 얼마 뒤면 알아서 용서를 빌고 돌아올 것이다.

아누는 짐리림 일행이 낯설고 알 수 없는 생물이 득실거리는 가이다의 생태계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한편에도 아누는 에질과 일레는 용서하더라도 짐리림만큼은 용서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예전부터 사사건건 부딪혀 오며 감정싸움을 벌인 탓도 있었기에 아누가 짐리림을 미워하는 마음은 극에 달해 있었다.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진 쉬림의 시체가 치워진 한참 뒤에도 아누의 마음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짐리림에게 내릴 징벌은 약물을 주사한 후 탐사선의 동면실에 가두는 것이었다. 이 경우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은 단순히 동면실의 스위치를 내리는 것으로 되지 않았다. 일정온도가 올라가면 약물로 인해 오히려 사망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하쉬의 법에 따라 형벌에서 풀려나는 조건은 세대를 넘어서는 기한에 걸쳐 3회로 한정된 재심사에서 결정되고는 했다. 하지만 되돌아갈 기약이 없는 고향별 하쉬에서 멀리 떠나온 지라 아누의 결정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영원한 격리를 의미할지도 몰랐다. 아누는 자신의 결정이 과연 타당한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짐리림은 무작정 뛰어들었고 아누는 타당한 협상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네 아누. 난 자네와 진실 된 마음으로 대화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네.

짐리림은 손을 내밀며 아누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그간 내가 해 왔던 행동이 자네의 행동을 이끌어 낸 것이네. 용서를 구한다면 내가 먼저 구해야지.

가이다의 태양은 어느 사이에 또 다시 지평선 너머로 조용히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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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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