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8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25 17:00수정 2006.07.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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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다에 불시착한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탐사선 안에서 곧 일어났네.

아누는 붉은 빛을 내는 가이다의 낯선 노을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탐사선 수리를 지시한 아누는 매캐한 냄새가 도는 가이다의 대기가 탐사선 안으로 스며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초록색 식물로 뒤덮인 가이다의 웅장한 풍경이 아누를 맞이하고 있었다.

밖에서 본 탐사선의 상태는 아누의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엔진부위의 파손은 심각했고 선체도 크게 파손되어 있었다. 아누는 피해 상황보고가 들어오지 않자 다시 조정실로 들어가 구데아와 에아를 호출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송신기를 통한 구데아의 태연한 대답에 아누는 전에 없이 마음이 급해졌다. 낯선 생태계를 가진 가이다는 오래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가보겠다.


-잠시만 거기서 기다리십시오. 벨릴이 갈 겁니다.

구데아와의 통신이 끊어지기 무섭게 벨릴이 두 명의 승무원들을 대동하고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아누의 팔을 붙잡고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짓인가?

벨릴은 차갑게 대꾸했다.

-지금부터 아무 당신의 모든 직위는 박탈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누가 이런 명령을 내린 겐가?

벨릴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고 아누는 잡힌 팔을 풀려 애를 썼다. 순간 등 쪽이 뜨끔해지더니 아누는 팔다리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신체를 무력화시키는 충격기가 몸에 닿은 탓이었다.

-그러기에 순순히 말을 들었어야지.

벨릴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누를 탐사선의 동면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에아가 주사기에 약을 채워둔 후 동면기 하나를 점검하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소?

에아는 고개만 끄덕이며 이미 멍해진 상태의 아누에게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어서 진행하시오.

에아는 주사기를 들어 아누의 가슴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아누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운명을 짐작해볼 다름이었다.

‘이 자들이 날 영구격리 시킬 작정이구나. 그렇다면 짐리림이 모든 승무원들을 장악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런 무리한 짓을 할 이유도 없었고 황급히 도망갈 필요도 없었을 텐데.’

이윽고 아누는 마치 물건처럼 함부로 들어 올려져 동면기 안에 뉘여 졌다. 차가운 냉기가 아누의 온 몸을 휘감았고 비웃는 눈길로 벨릴이 아누의 얼굴에 빠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편안히 주무시오. 아누

동면기의 캡슐이 닫혀졌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아누는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가운데 깊은 절망에 빠졌다.

‘대체 이들이 왜 이러는가? 가이다의 낯선 환경이 순간적으로 이들을 미치게 했단 말인가? 내가 저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짐리림이 모두를 장악한건가?’

동면기 안은 견딜 수 없이 추웠고 어찌된 일인지 아누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어서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오해가 풀리고 이 동면기에서 풀려날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아니,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아누의 정신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약물의 영향인지 정말로 잠이 와 그런 것인지 불확실했지만 아누의 정신이 깊은 절망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만큼은 틀림없었다. 순간 캡슐이 열리더니 더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선장님, 정신 차리세요.

아누의 흐릿한 시야사이로 에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아는 더운 기운을 내뿜는 기기로 아누의 온 몸을 쏘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에아? 그리고 그 주사는......
-그 주사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미리 바꿔놓은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자, 어서 손발을 움직여 보세요. 괜찮은가요?

충격기의 효과는 이미 가신지라 아누는 금방 손발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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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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