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겐 핵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주장] 위기 상황일수록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등록 2006.07.27 11:49수정 2006.07.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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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중세의 서양인들은 르네상스를 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로마로의 회귀'를 가리키는 르네상스는 다른 말로 하면 '원칙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도 드러나듯이, 위기 상황에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원칙을 창안하거나 문제를 밖으로 확대시키기보다는 기존의 원칙을 강화하고 문제를 안으로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지금 북한과 미국은 서로 대조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심화된 위기 국면 속에서 두 나라는 문제의 본질과 관련하여 서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국이 문제의 본질과 관련하여 각기 어떤 해법을 취하고 있는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두 나라가 처한 문제의 본질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문제다. 그리고 북한은 핵우산을 앞세워 자국을 압박하는 미국에 맞서 생존권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문제의 핵심적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을 포위하기 위하여 국제적 연대를 결성하려 하고 있지만, 미국이 생각하는 핵심적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양국이다. 중국 외교부가 종종 "북·미 간의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통해서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로 역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군사·경제적 측면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위와 같은 양국의 입장을 절충하여 문제의 본질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핵문제의 핵심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있고, 미국은 핵우산과 경제제재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문제의 본질과 관련하여, 양국은 9·19 성명 이후 어떤 해법을 취하고 있을까?

먼저, 북한은 당면 위기가 북한 대 미국의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회담의 형식과 관련하여 북측 지도부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보다 양자회담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양자회담이건 6자회담이건 혹은 그 이상의 다자회담이건 간에 그 안에서 북-미 양국이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은 회담 형식이 어떻든 간에, 일단 금융제재가 해제되어야만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북한이 문제의 해법과 관련하여 '원칙'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문제가 양국 간의 문제이며, 또 자국의 미사일 위협이 미국의 경제제재와 대응관계에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9·19 공동성명 이후에 추가된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9·11 공동성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북한 지도부가 일종의 '르네상스적 해법'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어떠한가? 7월 5일(미국 시각으로는 4일)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이후로, 미국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추진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다시 북한을 제외한 7자·8자회담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게 "일단 6자회담으로 복귀하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회담의 형식과 관련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이 외형상으로는 '6자회담 속의 양자회담'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숫자'에만 연연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이 실질적인 양자대화를 희망하는 반면, 미국은 보다 더 많은 나라를 대북 압박 연대에 포함시키는 데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미국이 문제를 계속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해법이 문제의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없이는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을 제외한 5자·7자·8자회담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또한 '원칙'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북한이 금융제재를 명분으로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금융제재를 해제하든가 ▲아니면 금융제재의 당위성을 북한에 납득시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훨씬 더 강도 높은 금융제재로 아예 북한의 말문을 막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회담 복귀를 성사시키려면 미국이 금융제재와 관련한 모종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제재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북한의 회담 복귀가 성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계속 회담 참가국의 숫자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이 상호 대응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미국 국내법' 차원의 문제로 격하시키고 있다. 이 역시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지금 미국이 취하고 있는 해법은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계속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위기의 상황에 처하여 고대 그리스·로마 즉 '원칙'으로 회귀한 서양 중세인들의 문제 해법과 상반되는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기존 원칙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원칙을 도출하려고 고심한다면, 아마 그렇게 고심하는 사이에 문제는 더욱 더 커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이 취하는 행동이 바로 그러하다.

만약 미국이 진정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6가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원칙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르네상스적 해법은 서양 중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최선의 위기 타개책은 '원칙으로의 회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핵문제의 직접적 당사자가 미국 자신과 북한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의 대응이 강화된다 하여 '들러리'를 계속 끌어들이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오히려 세계적 범위로 확대시키는 결과만 초래될 것이다.

셋째,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대미 대응이 상호 대응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철회되지 않는 한 북한의 대미 대응도 결코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대북 압박을 철회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미 대응을 거두게 하려면, 미국 자신이 무력을 동원하여 북한을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목표를 분명히 하고 또 그 목표에 집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미국의 목표가 북한을 자국의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지금처럼 굳이 핵문제를 계속 확대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목표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그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대화를 통해서는 도저히 북의 프로그램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첨단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하루빨리 북의 핵 및 미사일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북한 지도부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부의 통치 정당성은 '안전'이 아니라 '자주'에 있다. 자주는 북한 정권의 민주적 정통성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어떤 위협을 가하더라도 북한은 자신들의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미국과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외세의 위협이 가중되면 될수록 자주적 분위기가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위협하면 북측 지도부가 굴복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오히려 북한 지도부는 그러한 '불안'을 이용하여 '자주'를 더욱 더 고양시키려 할 것이다.

여섯째, 북한의 입장을 한번 존중해 주면 북한 지도부가 의외의 '통 큰'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의 '진심'을 확인하는 순간 북한은 분명 자신들도 진심을 보이려 할 것이다. 이는 막혔던 둑이 한번 뚫리면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 사람들이 대륙 기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성이 북한 외교에 상당 부분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지도부가 김 위원장을 감동시키면 그도 '백배 천배' 갚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그가 예술적 기질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지금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르네상스적 해법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가급적 문제를 안으로 수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이 본질에서 벗어나 문제를 밖으로 계속 확대시킨다면, 이는 미국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라면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제거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북한 지도부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가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 '들러리'들을 계속 끌어들이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면, 핵문제는 한반도 문제에서 동북아 문제로 다시 세계적 문제로 계속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자주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될 뿐만 아니라, 설령 미국이 승리한다 해도 미국의 '지분'은 참가국 수에 비례하여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미 핵문제가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면,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과부하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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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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