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영
장마가 마악 끝날 무렵 우리 집에서 아내로부터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끼리 1박 2일짜리 놀이마당을 열었습니다. 어른들 간섭 없이 일곱 명의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일정표를 짰습니다. 어설픈 단편영화도 찍고, 집 옆 개울에서 물놀이를 해가며 가재를 잡거나 곤충을 잡으러 산에 오르는 등 이런저런 놀이판을 벌였습니다.
그 첫날밤이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매년 그래왔듯이 이야기 마당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야기 마당에서는 이야기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됩니다. 나는 긴장감 넘치는 으스스한 공포심을 조장하면서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이야기를 조절해 나갑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 자신조차 모릅니다. 결말을 아이들 스스로가 내려야 합니다.
“자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혼을 빼앗기게 되는 거여, 혼을 빼앗기면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되는 겨, 준비됐지?”
이야기도 시작하기 전에 벌써부터 무서움이 오싹 몰려오는지 유림이가 내 옆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넵니다.
“그냥, 무서운 얘기 말구 웃기는 얘기하면 안되나요?”
“너희들은 어뗘? 무서우면 그만둘까?"
“아니요, 그냥 해요! 무서운 얘기가 좋아요.”
“유림이 너는?”
“그럼 나도 한번 해볼께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쑥대를 베어와 마당 한가운데에 모깃불로 지펴놓고 집안에 있는 전기불을 모두 다 껐습니다. 흐물흐물한 모닥불 빛이 아이들 얼굴에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 이제부터 너희들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누군가의 혼이 있어야 혀, 어떻게 할지 차례대로 얘기혀 봐, 혼을 못 얻게 되면 오늘밤 잠도 못자고 밤새도록 귀신처럼 밖에서 떠돌아 다녀야 혀, 만약 혼을 찾게 되면 맘 편하게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는 겨, 누구부터 얘기 헐껴?”
인효: 다른 사람에게 설득해 볼껴, 혼 좀 달라고
나: 너희들 중에 누가 인효에게 자신의 혼을 내 줄 사람 있어? 있어 없어? 아무도 없잖아.
인상: 다 같이 모여서 함께 혼을 찾으면 되지.
나: 어떻게?
인상: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다 같이….
유정: 누군가의 방에 가서 수면제 먹이고 잠잘 때를 기다렸다가 몰래 가져 올 꺼예요.
나: 니들 유정이가 수면제 먹이면 먹고 잘 사람?
아이들 : ….
나: 아무도 없는디? 그럼 다음 누가 얘기헐겨?
재림: 저는 생각 좀 더 해보고요.
규성: 강제로 빼앗지요.
나: 강제로 빼앗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겨.
규성: 왜 안 돼요?
나: 혼은 강제로 빼앗길 수 없는 겨, 혼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물건처럼 빼앗을 수 있어?
은아: 여기서 제일 약한 유림이한테 달라고 할래요.
나; 유림이 너 은아에게 니 혼 줄껴?
유림: 내 혼을 주면 어떻게 되는데요?
나: 혼을 잃게 되면 밤새도록 밖에서 떠돌아야 한다고 했잖아?
유림: 그럼 자기 혼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나요?
나: 안 되지 누군가의 혼이 있어야 네가 자유로울 수 있어? 너 혼자만의 것으로는 완성할 수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우리 이야기의 규칙여.
인상: 내 꺼 주면 되지.
나: 니껀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잖아, 그럼 나머지 다섯 명은 어떻게 하고. 너희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혼을 얻지 못하면, 모두가 다 잠 못 자고 귀신처럼 떠돌게 되는디?
인상: 그럼 서로 주면 되잖아?
나: 그럼 너희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혼을 줄 수 있어?
이야기 속 주인공들 4,5,6학년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4학년짜리 인상이의 제안에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혼을 줘서도 안 되고,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혼을 얻지 못하면 똑같은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에 다들 초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박한 촌놈들이다보니 이 이야기에서 빠져 나가려 하는 녀석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인효: 죽는 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전부 다 희생하면 돼.
나: 그래 멋진 말이다. 그럼 너 다른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
인효: 내가 희생해서 그 사람에게 은혜 갚으라고 하면 되잖어.
나: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구, 너희들 중에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놈들은 제일 먼저 떠돌게 될 거여, 너희들이 주인공이니까 너희들이 풀어 나가야 혀.
유림: 근데요, 아저씨, 이거 인터넷에서 찾은 이야기예요?
나: 아니, 저기 우리집 고양이가 알려 준 건디.
유림: 아저씨는 고양이하고 말이 통해요.
평소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유림이가 샛길로 빠지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몇몇 녀석들 입에서 서로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이 녀석이 나섰습니다.
인상: 모두가 희생하면 되잖어.
재림: 그래 모두가 희생하자….
규성: 그래 그러자.
나 : 그래 좋다. 그럼 너희들 중에 컴컴한 산에 갔다 올 사람? 거봐라 아무도 희생할 사람이 없잖아.
아이들: 모두가 함께 가면 안돼요?
나: 그려? 유림이하고 유정이 은하도 갈 수 있어?
유정: 함께 가면 갈 수 있어요.
은아: 나도요.
나: 유림이 너두?
유림: 다 같이 가면요, 그런데 랜턴은 주셔야 돼요.
아이들은 모두가 혼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두운 산길을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일곱 명의 아이들 모두가 평소 무서워했던 컴컴한 산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돌아 올 때는 손에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줄줄이 손을 잡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대충 이런 노래였습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아내가 컴컴한 산길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감격의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힘’이니 ‘하나된 마음’이 어쩌니 말해주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에 손을 잡고 어둠 짙게 깔린 산에 다녀온 아이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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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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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일곱 명 아이들은 두 다리 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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