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비 교사의 아름다운 번민

나는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야 할까?

등록 2006.08.05 20:04수정 2006.08.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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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남몰래 온정을 베풀거나 온전한 자기희생을 통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해온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또한, 자신의 열악한 환경을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겨자씨만한 희망의 씨앗을 잘 가꾸어 끝내 성공에 이른 사람도 아름다운 인간이라 칭할만 할 것이다.

거기에 또 한 유형의 아름다운 인간상을 더한다면 '번민하는 사람'이 아닐까. '번민’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물론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하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닐 터이다. 중요한 것은 번민의 이유이다. 번민의 방향성이다. 다음은 서너 달 전쯤 경북 경산에 사는 한 예비교사가 내게 보내온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

‘스물여섯에 처음 '가르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그래서 어떻게 쓰이든 교사자격증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고 수험생활을 할 때, 그때는 참 분명하던 '내가 되고 싶은 교사'의 모습이 요즘은 참 희미합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동굴 입구에 스며든 작은 빛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스무 살에 겨우 시작한 고민은 아직도 안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야 할까? 오히려 고민거리만 많아졌습니다. 며칠 전에는 난 왜 이런 반찬거리도 안 되는 고민이 만득이 귀신처럼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면서 언니에게 투정부리듯 이야기하다가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나도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는데, 특히 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나는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야 할까?’라는 바로 그 대목이었다. 교사가 되고 싶으면 사범대학을 나오거나 교직과목을 이수한 뒤에 열심히 임용고시를 준비하여 점수를 1점이라도 더 올려 합격할 생각을 하면 될 일이지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겠고, 편지를 쓴 이는 그런 세간의 통념이나 상식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첫 편지에 ‘평소 선생님의 연재기사를 기쁘게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한 뒤에 ‘부탁은 저와 이야기를 좀 나누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라고 사뭇 절박한 어조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저와 얘기를 해달라는 그 부탁이 저를 끌었다고나 할까요? 저도 인생의 고비에서 누군가에게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었지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제 자신 대견스럽고 기쁘답니다. 오늘 제 컴퓨터에 방을 하나 만들어놓았습니다. 작년에는 담임을 하느라 서른다섯 개의 방이 필요했는데 올해는 단 하나의 방뿐이네요.’


솔직히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이들하고 주고받는 메일이야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쏟아놓으면 그뿐이지만, 예비교사로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바꿀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예비교사로서의 번민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자신의 일을 고민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교사가 되기 전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예비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후배나 동료교사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 중 하나인 하임 G 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500명의 교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사범대학에 다닐 때, ‘아이들은 여러분들을 자주 짜증나게 하고, 괴롭히고, 화나게 할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이렇게 하면 됩니다’하고 가르쳐준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 강의를 들어본 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내기 교사들의 입에서 절망에 가까운 끔찍한 고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교사 생활한지 1년이 되었는데, 지금 결론은 이 직업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사랑과 환상에 가득 젖어 있었어요. 이제 환상은 증발하고, 사랑은 가버렸어요. 교직은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과정, 일수 찍듯 날마다 생명을 거두어 가는 과정이에요.”

a 순천만에서

순천만에서 ⓒ 안준철

지난 주, 그녀가 남자친구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경북 경산에서 전남 순천까지의 만만치 않은 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온 두 젊은이를 나는 순천만으로 안내했다. 날이 너무 더워 순천만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까지는 가지 못하고 대대포구를 구경한 뒤에 확 트인 갯벌이 아름다운 화포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석양 무렵, 압록을 지나 구례로 가서 섬진강 푸른 물줄기를 구경하고 난 뒤에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는 함께 있는 동안 교육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만, 남자친구의 얼굴이나 행동거지가 순수하고 정겹게 느껴져서 그랬는지 섬진강 근처 냇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동안 이런 말을 해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도 많이 친해져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되었다.

“순수하면 되는 거야. 두 사람 사이도 그렇고,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수단화하는 거지. 나중에 교사가 되거든 아이들을 사랑해줘.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 사랑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줘. 그러면 좋은 교사가 되는 거야. 그 순서가 뒤바뀌면 이미 사랑이 아니야.”

a 짱뚱어는 오염된 바다에서 살 수 없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짱뚱어는 오염된 바다에서 살 수 없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 안준철

그 말에 두 젊은이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해도 될 말을 해준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미래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로 번민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리고 함께 오붓하게 보내고 싶었을 휴가를 예비교사인 여자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청년의 순수한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 두 사람이 벌써부터 그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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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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