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사랑'이 금별을 닮은 꽃으로 피어나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48]기린초

등록 2006.08.13 20:19수정 2006.08.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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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기다란 기린의 목처럼 뜨거운 여름 풀밭에서 길게 고개를 내밀고, 여름 밤하늘에 빛나는 별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는 노랑별꽃, 금별꽃을 닮은 꽃이 있다. 꽃말은 '소녀의 사랑'이요, 이름은 '기린초'라는 꽃이 그 주인공이다.

꽃만 보면 바위채송화, 돌나물, 주걱비름, 땅채송화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모두 금빛에다가 꽃모양까지 비슷하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비슷한 꽃을 가진 것 중에서는 비교적 봄에서 멀리 피는 꽃일수록 여름햇살에 단련이 되어 더 단단하다는 것이다.

꽃은 작지만 한 무더기로 옹기종기 모여 피어난다. 마치 밤하늘 작은 별들이 모이고 모여 강을 이룬 은하수같고 밤하늘 높이 올라가 막 터진 폭죽의 불빛을 닮았다.

기린초의 꽃말, 하필이면 '소녀의 사랑'일까? 이루지 못한 아픈 사랑의 사연이 들어있을 것만 같아서 강인해만 보이던 그 꽃이 가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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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녀의 꽃말은 '소녀의 사랑'이란다.
밤하늘의 별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별꽃이 되어
인간의 몸을 입고 화육(化肉)한 예수처럼 살아간다.
남을 해치기 위한 무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기린,
먼저 보고 무작정 달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운명,
그녀의 눈망울이 슬픈 이유다.
어둠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그 별,
수줍은 야생화가 되어 그러나 당당하게
타오름달의 숲 속에 금별꽃으로 피어났다.
소녀의 사랑을 이루어준 별똥별이 떨어진 그 곳,
그 자리에 피어난 금별꽃, 기린초.

<자작시-기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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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기린초의 꽃말이 만들어진 내력을 알지 못하니 소녀의 사랑이 담겨 있는 아련한 동화같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밤하늘 별을 하나 둘 세다보면 별똥별이 떨어지곤 했다. "야,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더라"하는 말에 잔뜩 기대를 하고 별똥별을 기다리지만 별꼬리가 있는 동안에는 고작 "와!"소리밖에는 지르지 못했다. 소원을 빌기에는 너무도 짧은 순간, 찰나였던 것이다.

결국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을 하다가 별 하나 별 둘 세다가 잠들어버리고, 깊은 잠을 자다 깨어보면 어느새 모기장이 쳐진 방에 잠들어 있곤 했다. 지난 밤 떨어진 유성들은 어느 곳에 떨어졌을까? 그 누군가의 소원을 담아 떨어진 유성, 그들이 하나 둘 피어나 별꽃이 된 것은 아닐까?

작은 별들처럼 땅에 피어나 별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들도 있고, 이렇게 기린초처럼 별을 닮을 꽃도 있다. 이런 꽃들 모두 하늘과 땅의 경계를 아우르며 피어나는 꽃이라 생각한다. 하늘과 땅, 그것은 어떤 구분과 경계가 아니라 그렇게 구분되어 있고 경계지어 있음으로 인해 더욱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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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뜨거운 햇살, 그것은 잎을 푸르게 하지만 너무 뜨거워 잎에 화상을 입히기도 한다. 화상을 입은 이파리는 누렇게 말라버릴 수밖에 없다. 더운 여름 날, 축축 처진 이파리들을 보면 그들의 힘겨운 삶의 단편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치고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없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오히려 바람이나 척박한 환경이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더운 여름날의 목마름을 통해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만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철저하게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생명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줄 안다. 그래서 참 사랑,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경지에까지 나아간다. 그냥 자기만 사랑할 뿐인데 이웃사랑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자연은 사람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능한 것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품에 안겨 있다 오면 그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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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기린초의 꽃말이 '소녀의 사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기린초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라고 상상을 해보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소원을 빈 지 백 일만에 드디어 별꼬리가 떨어지기 전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소원을 빌 수 있었다. 그 소녀의 소원은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의 가장 맑은 소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누구나 들어도 감동을 받을 만한 그런 소원이다.

그 소녀의 소원을 들어준 별똥별이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지구상에 수많은 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소원을 들어준 별들은 땅에 떨어지면 꽃을 피우도록 하나님이 복을 주었다. 그래서 별꽃들이 이 땅에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 별꽃들이 꽉 차자 별을 닮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기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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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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