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진실게임', 청와대가 '상투' 잡힌 이유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신문유통원 표류, 청와대·여당엔 책임없나

등록 2006.08.14 09:18수정 2006.08.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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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 김기

일이 참 고약하게 됐다. 지금 전개되는 진실게임이 어떻게 판명 나든 노무현 대통령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또 다시 인사권에 대한 도전행위가 발생했다. 이번엔 정무직 공무원이다. 계급사회, 상명하복 사회에서 최고 인사권자에 대해 '부하'가 대드는 일이 발생했다.

법무장관 인선을 둘러싼 당청갈등과는 '급'이 다르다. 당청갈등은 수평적 관계에서 표출된 이견이라고 쳐도 이번 파문은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한 사실상의 하극상이다. 그것도 가장 민감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두고 말이다.

법무장관 인선 파문은 청와대 오찬모임으로 풀었지만 이번 파문은 달리 풀 자리가 없다. 당청 갈등은 '소통'으로 봉합했지만 이번 파문은 그럴 수가 업다. '제압'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인사권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청와대가 상투를 잡혀 버렸다.

'인사 압력' 진실게임, 파문의 전부 아니다

청와대가 '인사 압력'을 행사했는지, 아니면 '정상적인 인사 협의'였는지는 따지지 말자. 이 자리에서 진위를 가를 재간이 없을뿐더러 그게 파문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청와대는 그랬다. 유진룡 전 차관을 경질한 이유는 '심각한 직무 회피' 때문이었다고 했다. 신문법에 따라 설립된 신문유통원에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데 문화관광부가 이를 회피했고, 그 주역이 바로 유진룡 전 차관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나서서 직무감찰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경질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설명이지만 오히려 이 게 청와대의 발목을 잡는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시점부터 따져보자. 청와대가 밝힌 유진룡 전 차관의 '심각한 직무 회피'는 "신문법 제정(지난해 1월 27일) 이후 후속 업무들을 고의로 회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유진룡 정책홍보실장을 차관으로 승진 임명한 시점은 올해 2월이었다. 신문법이 시행에 들어간 게 지난해 7월 28일이니까 '심각한 직무 회피'가 반년 동안 지속된 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차관으로 승진 임명했다.

이는 뭘 뜻하는가?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얘기다. 임명한 지 반년 만에 전격 경질할 만큼 '심각한 직무 회피'를 한 사람을 인사 검증과정에서 거르지 못했다면 청와대도 '심각한 직무 태만' 행위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이게 청와대의 발목을 잡는 첫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직무 부실이다. 청와대가 유진룡 전 차관의 '심각한 직무 회피' 사례로 꼽은 건 신문유통원 예산에 '매칭 펀드' 시스템을 도입해 국고 지원을 늦췄다는 점이다.

'매칭 펀드' 시스템은 신문유통원에 참여하는 신문사가 투자하는 액수만큼 국고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문화관광부가 현실성이 없는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기획예산처와 합의해 신문유통원의 업무를 지연시켰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 매칭 펀드 시스템이 문제가 돼 갖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국고 100억원이 지원된 시점은 지난 6월이었다. 신문유통원이 설립된 지 7달 만에, 애초 지원 일정보다도 두 달이나 늦게 돈이 나온 것이다 .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그 동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뭘 하고 있었는가?

신문법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언론 개혁의 상징으로 꼽아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의 하나로 적극 추진했던 법률이다. 그랬던 법률이 시행국면에 들어가자마자 표류하고 있었다. 실행계획이 거의 마련되지 않았었다는 반증이다.

실행 계획이 없었던 신문법... 청와대엔 책임없나

국회의원의 법안 날림 발의를 막기 위해 소요 예산 규모와 조달계획을 명시하자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일개 법률에 대해서조차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판에 청와대와 여당이 심혈을 기울인 법률의 실행 계획이 제대로 짜이지 않았고, 후속 집행과정에서도 점검과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실행 계획이야 문화관광부 소관이라 치고, 직무 점검과 조율은 어디 소관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직무 감찰을 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 성립될 만도 하지만 이런 반박도 가능하다. 민정수석실의 직무 감찰은 최근의 일이다. 민정수석실이 직무감찰에 나설 때까지 '심각한 직무 회피' 사실을 새까맣게 몰랐던 직무 부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청와대는 이르면 오늘, 민정수석실의 직무감찰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직무감찰 결과가 공개되면 유진룡 전 차관의 경질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란 설명도 덧붙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경질 파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게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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