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엔 '희망'의 씨앗이 가득합니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49] 갯금불초

등록 2006.08.17 08:26수정 2006.08.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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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해안가의 척박한 모래땅이나 갯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어쩌다 그 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다른 식물들이 마다하는 곳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삼았기에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자기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생존전략을 구사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주로 '갯'자가 들어가면 바다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바다를 친구삼아 살아가려면 이파리며 꽃이 야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금에 절 수 있으니 꽃을 피우는 것은 고사하고 늘 풀죽어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피어나는 꽃들, 아예 소금기가 가득한 모래땅에 뿌리를 내리고도 활짝 웃는 얼굴로 피어나는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보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할 때 힘을 얻는다. '이 작은 꽃들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하는 생각에 미치면 '그래, 다시 일어서는 거야!' 다짐을 하곤 한다. 무언가에 짓눌려 있었던 마음이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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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갯금불초, 금불초와 같은 국화과의 꽃이지만 갯가에 핌으로 '갯금불초'가 되었다. 금불초는 꽃잎이 다닥다닥 붙어 작은 해바라기를 닮았는데, 갯금불초는 많아야 열 장, 보통 대여섯 장의 꽃잎을 달고는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듬성듬성 꽃잎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그 노란꽃잎의 색깔만큼은 금불초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더 진하고 강인하다.

식물에 '금(金)'자가 붙으면 '노랑색'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은 '불초(佛草)'라는 이름은 불교와 관련이 있는가 상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바닷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꽃은 인내하지 않고는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연단과 인내는 잘 어울리는 말이요, 그 인내는 그의 마음에 자비심을 키워주었을 것이니 부처님의 '자비심'을 한껏 품은 꽃은 아닐까? 아니, 그가 부처가 아닐까 싶다.

금불초의 꽃말은 '상큼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갯금불초의 꽃말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단어의 어감을 따라 지어준다면 '상쾌함'이라고 지어주면 어떨까 싶다. 매일 바다를 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밋밋하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얼마나 상쾌한가? 그런 의미에서 갯금불초의 꽃말은 '상쾌함'이라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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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제주에는 한 겨울에도 푸른 것들이 많은데 갯금불초도 그 중 하나다. 간혹 양지바른 곳 바위틈에 꼭꼭 숨어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한창때에도 듬성듬성 이 빠진 동그라미 같은 꽃이 겨울에 피었으니 더 초라하다. 게다가 한 겨울에도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 있는 제주에서는 그 얼굴 삐끗 내밀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국화과의 꽃은 식물 중에서 가장 고등식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가을꽃으로 알고 있는 코스모스(질서)도 국화과의 꽃이다. 사실, 코스모스는 여름꽃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피어나고 여느 국화꽃들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날씨만 맞으면 종종 피어난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와 대립된다는 점에서 신이 처음 만든 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꽃을 다 만들고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 국화꽃이란다. 국화꽃이 고등식물인 이유, 이 정도면 설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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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목 마르다!" 절규하는 십자가의 예수처럼,
"목 마르다!" 절규하면서도 그 척박한 땅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온 땅을 삼킬 것 같은 성난 파도에 휩쓸려
몸뚱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그 땅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어떤 날은 자글자글 파도소리에 잠들고,
어떤 날은 초롱초롱 별빛소리에 잠들고,
미명의 새벽바다 저 끝에서 붉은 해 피어날 때,
해를 닮은 꽃 한 송이 산고의 아픔을 딛고 피어난다.

그냥 핀 꽃이 아니야.
바람에 흔들리기만 한 꽃이 아니야.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야.
한 겨울 햇살 한 줌에도 피어나는 꽃이야.
내가 그 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꽃이기 때문이야.

<자작시-갯금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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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한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바다에 서서 아주 오랫동안 그를 바라본 적이 있다. 한 겨울 추위에 단 한 줌의 햇살을 의지하여 피어난 꽃을 보면서 겨우 그 꽃 한 송이 피우려고 이렇게 고생을 했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 '한 송이'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로지 이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웠다. 비로소 나는 그의 삶에는 '희망씨앗'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희망이라는 조각, 그것은 크지 않다. 아주 작고 때로는 흔하디 흔한 것이 희망이라는 조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흔하디 흔하던 희망조각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한다. 그럴 때 이런 작은 희망 씨앗이 필요한 것이다. 그 작은 희망씨앗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마침내 절망을 절망시키는 것이다. 죽음을 죽인 그 사나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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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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