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태풍 '산산'으로 하여 쓰러진 벼정판수
달내마을에 태풍 ‘산산’이 슬쩍 비켜갔다고 해도 피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제 대충 훑어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게 오늘 산책길엔 눈에 띄었다. 길을 따라 걷는데 삼거리에 왔을 때 한 곳의 논에 벼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벼를 일으켜 세우는 어른을 만났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다 바로 곁에 같은 위치의 논은 그대로인데 거기만 벼가 쓰러진 게 이상하여 여쭤보았다.
“이 논에만 물이 들었는가 봐요?”
“어디요. 이번 비에 이 논에만 들었을까 봐요.”
“그러면 어떻게 옆의 논은 괜찮은데 이곳 벼만 쓰러졌어요?”하는 말에 어른은 잠시 하늘에 눈을 주다가,
“내가 실수를 했지요. 모 심고 좀 덜 자라는 듯싶어 비료를 다른 곳보다 좀 많이 쳤더니만…”
얘기인즉, 다른 논보다 비료를 더 많이 쳤더니 그리 됐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허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모를 심고 나서 화학비료를 주는 건 특별히 유기농법을 활용하는 곳이 아니라면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비료는 작물의 생육을 빨리 하는데 효과가 있다. 비료 주지 않은 곳과 준 곳의 차이가 너무 뚜렷이 드러나는데 다른 곳보다 덜 자란다고 느꼈으니 더 쳤을 테고…. 문제는 그게 그만 탈을 일으킨 것이다. 즉 비료를 너무 많이 쳐 웃자람 현상이 도드라져 키는 커진 대신 뼈대가 약해진 것이다. 그러니 같이 물이 들었어도 쓰러진 몸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다.
비료를 많이 쳐 쓰러진 벼를 보자 문득 요즘 아이들이 생각났다. 지금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도 크다. 뿐인가, 혈색도 피부색도 훨씬 좋다. 그래서 겉만 보면 건강하다고 판단할 게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예전 체력장 검사의 중요 종목이던 1000m 달리기는 이미 사라졌다. 오래달리기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없어진 것이다. 턱걸이도 몇 개 못한다. 운동장 조례도 하지 못한다. 햇볕이 조금 강하게 내리쬐어도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아이들이 줄을 잇기에.
분명히 전보다 외형은 훨씬 더 커졌는데, 속은 더 약해진 것이다. 즉 단단하지 못한 것이다. 마치 비료 많이 친 벼가 바람 불거나 물에 잠기면 쉽게 넘어가듯. 이런 변화는 신체적인 면에만 국한되면 다행이리라. 불행히 정신면에서도 비켜가지 않는다.
비료는 벼가 스스로 버틸 능력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다. 그러니 비료 많이 먹고 자란 벼는 한 번 물에 잠기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애들이 자라는 동안 넘어질 때도 있고 다칠 때도 있는데 그때 요즘의 부모들은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 일어나기 전에 달려가 안아 일으킨다. 이렇게 보살핌 받고 자란 아이는 다음에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보다는 부모에게 기대고.
비료 많이 먹어 쓰러진 벼를 보고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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