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손대지 않고 어떻게 선을 길거나 짧게 만들어? 하면서 이해 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조태용
"아저씨, 이 도로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아세요."
공사장의 책임자로 보이는 덩치가 큰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도 이미 이 도로 끝까지 가본 경험이 있기에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조금 서운한지 "여기가 끝입니다"라고 맥 빠진 대답을 했다.
그는 아마 나에게 대단한 선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때 늦게 알은체 한 것을 후회했다. 그냥 사내의 선심을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어도 되었을 것을 말이다.
우리는 드디어 회남재의 그 긴 도로를 통과했다. 아스팔트가 끝나고 산길이 이어졌다. 적당한 자갈과 흙 그리고 길 가득 덮인 질경이를 밟고 가야 했다. 길 옆 물가에는 까치수영이 흰 꽃을 바람이 흔들며 우리를 환영해줬다.
"삼춘, 좀 쉬었다 가요" 조카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은 건넸다. 그러고 보니 쉬지도 않고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20kg 넘는 배낭을 메고 긴 오르막을 한 시간이 쉬지 않고 걸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조카와 나는 길가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조카는 숨을 고르면서 아직도 길이 멀었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지만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도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가본 것도 도로 끝이 전부니까.
나는 수첩을 꺼내서 줄 하나를 그었다. 그리고 조카에게 물었다. "정욱아, 이 선을 손대지 말고 길거나 짧게 만들어봐라?" 조카는 삼촌의 뜬금없는 질문에 수첩에 그어진 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삼춘, 손대지 않고 어떻게 선을 길거나 짧게 만들어?" 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 선 밑에 작은 선 하나를 그었다. 그리고 조카에게 물었다. "이제 좀 전에 그은 선이 길어졌지?"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카는 펜을 가져다 다시 긴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하면 이 선이 짧아지네?" "근데 삼촌 이것은 왜 갑자기 그린 거야?"라고 조카는 물었다.
"세상에 모든 일이 이처럼 상대적이라는 거야? 네가 아까 물었잖아 길이 얼마나 남았냐고?" "그것도 어떤 사람은 길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짧다고 하겠지 안 그래?"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