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5회

그 곳

등록 2006.10.09 16:52수정 2006.10.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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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직접 모시고 와야 하는데 박사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다 보니까…."

김건욱의 인사치레에 피곤했던 남현수의 마음속에서는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진작 나와 있겠다고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마음 같아서는 케냐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참 나…."

김건욱은 거듭 사과하며 현지 안내인이 운전하는 차로 남현수를 호텔까지 안내했다. 남현수는 마르둑이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김건욱에게 마르둑의 행방을 물었다.

"마르둑씨는 멀리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독을 풀고 원하신다면 천천히 시내관광이라도 하십시오. 내일은 좀 피곤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참, 출입국에서 황열병 예방접종 여부를 묻지 않던가요? 제가 미리 손을 써 놓았는데 하하하."

남현수가 생각해보니 예전에 연구차 아프리카에 갔을 때 출입국에서 예방접종의 유무를 확인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예방접종쯤이야 할 수 있었는데요."
"10일전에는 해야 하는 것이죠."


남현수는 낯선 땅에서 병에 걸릴 것이 두려워 김건욱을 쏘아 보았지만 정작 그는 딴청을 부리며 케냐의 음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케냐까지 오셨으니 냐마쵸마(각종 동물의 케냐식 바베큐 요리)를 맛 보셔야죠."


그런 말에는 으레 그것이 무슨 요리인지를 물어봐야 하는 게 통례였지만 남현수는 기분 나쁜 감정을 담아서 침묵을 지켰다. 김건욱은 마치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 해본 뒤에 호텔까지 배웅해 준 후 자리를 비켰다.

"나가셔서 나이로비 시내를 관광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프런트에서 무와이를 찾으시면 됩니다. 이 가이드 겸 운전수의 이름이니까요."

무와이는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남현수에게 웃음을 보였다. 남현수도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무와이에게 화답했지만 당장은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 뿐 나이로비 시내 관광은 엄두도 못 낼 지경이었다. 남현수는 호텔에서 샤워를 마친 후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남현수는 한 동안 일어나지 않았고 잠 속에서 무엇에인가 시달리며 괴로워 하다가 마치 용수철에서 튕겨져 나가듯 벌떡 일어났다.

남현수의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남현수가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남현수의 머릿속에서 내용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현수가 비틀거리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키는 사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객실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남현수는 수화기를 들었다.

"아, 남박사님? 푹 쉬셨습니까? 김건우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십시오. 저녁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좀 기다려 주세요."

남현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 후 옷을 차려입고 호텔의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케냐 전통 무용단의 안무와 함께 커다란 접시위에서 지글지글 익은 음식을 앞에 두고 김건욱이 웃고 있었다.

"한번 드셔 보십시오. 제가 말한 나마쵸바 입니다."

남현수는 바비큐로 보이는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가득 풍겨오는 풍미가 마치 남현수가 오래전에 잃었던 맛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그건 얼룩말고기랍니다. 석탄으로 구운 것이지요."

김건욱은 영양고기를 입안 가득히 넣고 우물거리는 남현수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남현수는 그 맛에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 가젤 고기도 한 번 드셔 보시죠."

남현수는 처음 먹어 보는 짐승의 고기임에도 김건욱이 권하는 바비큐 요리를 종류별로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껏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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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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