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북한 외무성이 핵실험 예고 성명을 발표한 데에 이어, 9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하 핵실험의 성공 사실을 발표하였다. 10월 6일자 유엔 안보리 의장 명의의 대북 경고 성명을 무색하게 하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었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다음 3가지 의의를 갖는다.
첫째, 10·9 핵실험은 북한이 2005년의 2·10 핵보유 선언을 한 단계 더 구체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2·10 선언이 '말'이라면, 10·9 핵실험은 '행동'이다. 이는 공식적 핵보유국을 향한 북한의 행보가 '말'의 단계에서 '행동'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10·9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자국의 핵우산으로 동북아 패권을 장악했으며, 그것을 배경으로 대북 압박정책을 끊임없이 전개해 왔다. 미국은 1993년 이래 2차례의 북-미 핵 대결 기간에도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측면에서 강도 높은 대북 압박정책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10·9 핵실험은 미국의 이 같은 대북 압박정책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목적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대북 압박정책을 강화했다. 특히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에는 금융계좌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북한의 '숨통'을 조여 왔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0·9 핵실험을 보란 듯이 강행했다. 이는 국제적 연대로 북한을 포위하여 핵 포기와 항복을 이끌어내겠다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이미 사실상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또 미국의 세계 리더십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미국 앞에 놓인 카드는 단 2가지다. 대북 압박정책을 해제하고, 북한과 공정한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이 그 한 가지다. 대북정책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대북 압박정책을 구상하고, 미 행정부 내 대북 라인을 전면 물갈이하는 것이 또 한 가지다.
셋째, 10·9 핵실험은 북-미 핵 대결의 구도를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대결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지금 당장에는 쉽사리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미국이 끝끝내 '징벌'하지 못하면 세계 각국은 미국의 지도력을 한층 더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상호 대등한 무기를 갖고 핵 대결에 임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미국이 우월적 입장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싹을 제거하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 싹이 자라 줄기가 되고 나무가 되었으므로 이제 미국은 핵의 싹이 아닌 핵의 나무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미국은 좀 더 일찍 북한을 제거하지 못한 자국의 정책적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번 10·9 핵실험은 ▲공식적 핵보유국을 향한 북한의 행보가 '말'의 단계에서 '행동'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북-미 핵 대결의 구도를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대결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실험 단행한 북, 앞으로 어떤 대미 대응 선보일까?
그럼, 이번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앞으로 어떠한 대미 대응을 선보일까? 미국도 나름의 대응을 선보이겠지만, 세계는 미국보다는 북한의 대응을 주시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플랜은 장기적인 데 반해 미국의 플랜은 근시안적이기 때문이다. 또 왜냐하면, 북한은 아무 말 없이 나름의 방법으로 미국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음에 반해, 미국은 소리만 요란할 뿐 "북한의 숨통을 끊겠다!"(2006년 상반기 미 재무성 고위 관료의 코멘트)던 호언을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대미 대응에 나설 것인가에 대해 이 글에서는 그중 4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번 핵실험 이상의 카드'를 꺼내지 않는 선에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시키는 데에 대미 역량의 주요한 일부를 할애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이번 단계'에서 무언가를 수확한 연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2·10 핵보유 선언 단계에서 9·19 공동성명을 얻어낸 다음에 10·9 핵실험 단계로 나아간 것과 같다.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규정한 9·19 공동성명이 앞으로 미국의 행보를 논리적으로 제약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북한에 분명한 '소득'이었다.
북한이 이번 단계에서 수확할 그 '무언가'에 들어갈 후보로는 대북 압박정책의 부분적 철폐나 핵보유국 인정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점에 관하여는 앞으로 더욱 세밀한 관측이 요구된다 하겠다.
둘째, 북한은 앞으로 일정 기간은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적 비난을 무력화시키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인정을 받기 위한 외교적 공세에 나설 것이다.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이 예상됨에도 북이 이번에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또한 핵실험 이후 그 어떤 대북 압박이 추가된다 하여도 그것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1993년 제1차 북-미 핵 대결 이후로 북은 온갖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압박을 받아 왔음에도, 김정일 주도의 선군정치로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의 제2차 핵 대결에 이르렀다. 북이 국제적 비난과 압박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은 이 같은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 바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북은 앞으로 한동안은 국제사회의 충격과 비난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할애할 것이다.
셋째, 북은 앞으로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또 다른 핵보유국인 미국을 상대할 것이다. 9·19 공동성명 이후 비교적 수세적 입장에 있었던 북은 앞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해 더욱 강하게 저항함은 물론 미국에 대해 의외의 타격을 가할 기회를 주시할 것이다. 이는 북한의 대미 대응이 종전보다 한층 더 공세적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의 핵 이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질적으로 한 단계 더 격상되지 않는 한, 북한도 자국의 핵을 해외로 이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10월 3일자 성명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북은 앞으로 9·19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대등한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으로서 그리고 9·19 공동성명의 당사자로서 북한은 미국에 대해 공정한 비핵화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이 북에 대해 북한의 핵 포기를 요구한다면, 북한 역시 미국에 대해 동북아 배치 핵무기의 포기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0·9 핵실험 이후의 북한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번 핵실험 이상의 카드'를 꺼내지 않는 선에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시키는 데에 대미 역량의 주요한 일부를 할애할 것이고 ▲앞으로 일정 기간은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적 비난을 무력화시키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인정을 받기 위한 외교적 공세에 나설 것이고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또 다른 핵보유국인 미국을 상대할 것이며 ▲9·19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