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하는 중국, '신미양요' 때도 그랬다

민족 이익의 관점에서 핵문제 풀어야 한다

등록 2006.10.11 10:30수정 2006.10.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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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비상하다.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전히 중국의 태도는 북·미 핵문제에서 중대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11일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 대변인이 대북 군사제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중국의 속내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확실한 북한 편도 아닌데다가 향후 상황이 얼마든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한마디 한마디에 좌우되기보다는 중국의 기본전략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 편이 훨씬 더 실용적일 것이다.

중국 정부의 기본적인 한반도 전략은 ▲압록강 이남에 적대적 정권이 출현하는 것을 차단하는 한편(제1전제) ▲중국 내부의 국민통합 및 경제개발이 일정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한반도에 적절한 긴장과 적절한 평화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제2전제).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이러한 두 가지 전제하에서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제1전제를 통해서는 중국이 어떤 경우에도 임진강∼이북∼압록강 이남에 친미정권(적대적 정권)이 수립되는 것만큼은 저지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도출할 수 있다. 다음 제2전제를 통해서는 한반도에 적절한 긴장과 적절한 평화가 유지되는 전제하에서 중국이 북·미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도출할 수 있다.

중국은 현상유지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문제를 크게 일으키지 않는 쪽’을 지지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주범이 누구든지 간에 ‘그 문제를 놓고 소란을 피우는 쪽’을 더욱 더 비판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북한이든지 미국이든지 간에 누가 문제를 일으켰는가를 문제 삼기보다는 이미 발생한 문제의 잘잘못을 가리면서 소란을 피우는 쪽을 더 비판하고 견제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는 미국의 북한 점령을 반대할 것이지만 그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북·미 양국 사이에서 애매 모호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시기의 중국 태도와도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당시와 핵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문제의 발단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당시 조선 측은 평양감사 박규수의 지휘하에 제너럴셔먼호 탑승자들을 완전히 섬멸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선원들이 조선에 살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기초로, 조선에 대해 생존자 송환을 요구했다. 물론 조선은 “생존 선원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다. 마치 오늘날의 ‘요코다 메구미’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1867년 및 1868년에 각각 아시아함대 소속 와츄세트호와 셰난도어호를 조선에 파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존 선원 구출에 실패한 미국은 1871년에 드디어 ‘대북 군사제재’를 결행한다(신미양요). 프레드릭 로우 주청 미국공사와 로저스 제독이 인솔하는 아시아 함대가 조선 원정(遠征)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미국은 조선 원정에 앞서서 중국 정부의 협조를 얻고자 했다. 중국의 협조 없이 대(對)조선 전쟁을 수행하려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대조선 원정 통고문서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조선 원정에 대한 중국측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중국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당시에도 중국 정부의 대조선 전략은 적대적 세력의 조선 장악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는 한반도-만주-중원이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라는 전통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중국은 처음에는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미국의 원정 통고를 중국이 대신 전달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우 공사가 총리각국사무아문(외교 주무부서)을 상대로 끊임없는 설득 공세를 벌이자 중국은 할 수 없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조선과 서양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에 걸쳐 표명한 바 있는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거듭되는 요구 앞에서 결국 입장을 바꾸고 만 것이다. 그러자 중국의 동의를 얻었다고 간주한 미국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선 원정을 결행하게 되었다.

미국이 보기에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외견상으로는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지지의 표명이었다. 원정 통고문서를 대신 전달해 준다는 것은 미국의 ‘대북제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심은 '자국 이익', 민족 이익 관젬에서 핵 문제 풀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중국의 태도를 완전히 ‘친미적’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힘들다. <주판이무시말>이나 <동문휘고> 등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그러한 자국의 행동을 ‘조선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하였다.

중국이 미국의 편지를 대신 전달해 주지 않으면 외국 사정에 어두운 조선이 미국의 침략에 대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세웠던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이 미국의 원정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의 편지를 대신 전달해 주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침략이 정복이 아닌 제재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었으므로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조선 원정을 지지한다 하여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이처럼 1871년 당시의 중국은 미국이 조선을 삼키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적절한 선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한편 조선에 대해서는 “조선을 위해 미리 귀띔해 주는 것”이라는 식의 애매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선례를 고려할 때에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중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얼마든지 대북 군사제재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가 적대적 세력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에 했던 것처럼 지원군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어느 쪽이라도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나라를 지지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중국이 향후 미국의 대북 군사제재에 일정한 지지를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한국과 북한의 전략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과 북한은 중국이 일시적으로나마 대북 군사제재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 지금의 핵 문제를 민족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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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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