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형 봉우리, '파라오의 영생' 꿈꾸다

[제주의 오름기행 23] 기생 화산 밀집군 거미오름

등록 2006.10.19 17:40수정 2006.10.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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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미오름 중턱은 오름새끼들로 장관을 이룬다.

거미오름 중턱은 오름새끼들로 장관을 이룬다. ⓒ 김강임

푸른 초원이 펼쳐진 목장 길에 살찐 누렁이가 가을 나들이를 나왔다. 살찐 어미 소는 낯선 손님을 보자 '음매- 음매-' 울어댄다.

피라미드형 봉우리가 인상적인 거미 오름에 오른 것은 추석을 1주일 앞둔 토요일 오전. 오름 중턱에 밀집되어 있는 이구류(오름새끼)에는 성묘객들이 줄을 이었다. 새끼 오름마다 여백 없이 들어선 제주 특유의 산 담, 그 안에 자리 잡은 묘지.


거미오름 중턱은 언제부턴가 죽은 자의 터가 되어버렸다. 좁은 땅덩어리에 죽은 자의 영혼까지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오름 전체가 묘지로 뒤덮이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거미오름 중턱에는 수도 셀 수 없이 봉긋봉긋 솟아있는 오름 새끼오름이 마치 왕릉 같았다. "무슨 왕릉이 저렇게도 많은 걸까?" 용암류와 함께 흘러내린 토사가 퇴적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자연현상. 기생화산의 잔해 물이 이렇게 멋진 풍경을 연출하다니, 제주 오름의 진수는 그 속살로 들어가 보아야 그 멋을 느낄 수 있다.

지나가던 구름이 새알처럼 어여쁜 새끼오름 위에 머문다.

a 거미오름 가는길은 사방이 뚫려있으나, 오름은 길을 쉬이 내 주지않는다.

거미오름 가는길은 사방이 뚫려있으나, 오름은 길을 쉬이 내 주지않는다. ⓒ 김강임

거미오름에서 '파라오의 영생'을 생각하다

지난 6월 백약이 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거미오름 봉우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봉우리가 피라미드였기 때문이었을까.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는 거미오름 정상을 보고 저승에서도 영원한 삶을 꿈꾸었던 파라오를 떠올렸다. 마치 시간을 영원히 정복하려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표고 340m 거미오름 가는 길은 변화가 심했다. 특별히 정해놓은 등산로가 없으니,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열린 공간으로 발을 옮기면 된다. 오름의 능선은 보송보송한 잔디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고, 때로는 험한 능선을 걸을 때도 있다. 정상이 바로 눈앞에 보이지만, 쉬이 그 정상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이 제주 오름의 비밀이다.

a 거미오름 중턱은 보랏빛 꽃들의 고향이다.

거미오름 중턱은 보랏빛 꽃들의 고향이다. ⓒ 김강임

보랏빛 야생화의 고향


거미오름 중턱에서 만난 보랏빛 야생화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무릇,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섬잔대, 가을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쑥부쟁이, 끊임없이 나비와 벌을 유혹하는 엉겅퀴. 거미오름은 보랏빛 야생화의 고향 같았다.

a 고개숙인 꽃은 섬잔대 아닌가 싶다.

고개숙인 꽃은 섬잔대 아닌가 싶다. ⓒ 김강임

꽃에 젖어 가슴이 두근거려지는 순간, 발걸음마저 느려진다. 가을야생화의 청초함에 빠져들 무렵, 노랑나비와 여치가 길을 인도했다.

a 피라미드형 봉우리에서 누군가 '야-호'를 외쳤다.

피라미드형 봉우리에서 누군가 '야-호'를 외쳤다. ⓒ 김강임

거미오름은 '사면이 둥그렇고 사방으로 뻗어나간 모습이 거미집처럼 생겼다'고 하여 거미오름이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거미집에 들어가 보면 거미집 같은 언덕보다 더욱 복잡한 것은 거미오름 분화구이다. 거미오름은 복합화산체로 깔대기 모양의 원형분화구 2개와 삼태기 모양의 말굽형 화구가 있다. 그 화구 안에는 초지가 발달하여 마소의 터전이 되고 있다.

a 기미오름 분화구는 누렁이와 검둥이의  터전이지만 훼손이 우려된다.

기미오름 분화구는 누렁이와 검둥이의 터전이지만 훼손이 우려된다. ⓒ 김강임

분화구, 방목과 묘지로 훼손 우려

돔형 봉우리에 서니 천고마비의 계절을 실감케 했다. 분화구 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높은 가을 하늘로 치솟는 능선은 또 하나의 풍경이다.

a 거미오름에서는 멀리 제주 동쪽의 해안과 우도, 성산 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다.

거미오름에서는 멀리 제주 동쪽의 해안과 우도, 성산 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다. ⓒ 김강임

멀리 제주 동쪽 해안과 우도, 성산일출봉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돔형 봉우리이다. 그러나 살찐 누렁이가 피라미드 기슭까지 올라와 풀을 뜯는 거미오름. 거미오름의 인간의 최후 안식처로, 마소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마소의 발굽에 짓밟혀 초지 훼손과 토사의 유출은 오르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a 삼태기 같은 분화구의 모습

삼태기 같은 분화구의 모습 ⓒ 김강임

제주오름 능선에서 보는 능선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기만 하다.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그 운치와 색채가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제주 오름의 진미가 아닌가 싶다.

드디어 피라미드 봉우리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능선으로 통하는 길에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경사가 만만치 않아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능선 아래로 떨어지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착각에 정신이 아찔하다. 피라미드 속으로 가보니 미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a 피라미드 봉우리에 서니 아찔했다.

피라미드 봉우리에 서니 아찔했다. ⓒ 김강임

영원한 삶의 거처 속으로

피라미드 봉우리에 다다르자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진정할 것 같은 기분, 삶은 긴장된 상태에서 가장 진지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의 진지함, 피라미드 봉우리에 서서 내가 느낀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 영원히 살고 싶어했던 파라오의 욕망이 이처럼 강인했을까?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능선의 굴곡은 마치 우리가 걷고 있는 인생길과 같이 굴곡이 심했다.

a 마소의 방목으로 초지의 훼손이 우려된다.

마소의 방목으로 초지의 훼손이 우려된다. ⓒ 김강임

거미오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주 오름이 점점 묘지로 채워지지는 현실과 오름 분화구가 목장으로 탈바꿈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는 오르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름새끼로 장관 이룬 거미오름

▲ 백약이 오름에서 본 거미오름

거미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기생 화산구로 복합화산체이다. 거미오름은 표고 340m, 비고 115m, 둘레 3613m, 면적 46만6283㎡, 저경 992m이며 동거문오름, 동거문이라 부른다.

거미오름 정상은 피라미드형 봉우리와 돔형 봉우리 등 4개의 봉우리가 있고, 원추형 분화구 2개와 말굽형 분화구 1개가 있다. 처음 분화구 때 솟은 화산쇄설물이 화구를 형성했고, 용암류 분출로 화구륜 일부가 파괴, 말굽형으로 패이면서 산사태로 오름새끼가 형성되었다 한다. 낙엽활엽수와, 소나무, 삼나무가 자라며 오름 전체가 초지로 이뤄졌다.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 중에서)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길 : 제주시- 구좌 송당사거리- 수산(1.5km)- 구좌읍 공동묘지-높은오름-500m 들판- 거미오름으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거미오름에 올라 4개의 봉우리까지 돌아보는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길 : 제주시- 구좌 송당사거리- 수산(1.5km)- 구좌읍 공동묘지-높은오름-500m 들판- 거미오름으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거미오름에 올라 4개의 봉우리까지 돌아보는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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