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와 주성영 의원의 '아름다운 전통'

[取중眞담] 1년전 '술자리 폭언'... 1년후 "고향분께 부끄럽다"

등록 2006.10.20 02:22수정 2006.10.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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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답변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고 한다.

19일 오전 대구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국정감사. 한나라당 소속인 안상수 법사위원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앞서 한나라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을 소개했다.

"관내에 인연을 가지고 있는 위원을 소개하겠다. 대구 동구갑 출신의 주성영 의원이 있다. 대구 고검에 근무한 바 있으며, 평소 해박한 법률지식과 왕성한 의정 활동으로 많은 의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국정감사를 맞아 열정적으로 의원 활동을 펴고 있다."

이어 안 위원장은 '아름다운 전통'에 대해 얘기했다.

법사위의 '아름다운 전통'... "지역 출신이 제일 먼저 질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할까.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출신 의원들이 먼저 질의를 하는 전통이 있다. 또 사회권을 대폭 양보해서 그 분들이 위원장으로서 직무를 대신하는 데 대폭 지원하겠다. 주성영 의원이 제일 먼저 질의를 하겠다."

'아름다운 전통'에 따라 당초 13번째 질의자로 예정돼 있던 주 의원이 첫 질의자가 됐다. 그러나 10여분에 걸친 주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마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집단퇴장하는 등 소동이 벌어져 결국 국감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주 의원의 질문 내용이 화근이 됐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금품수수 사건과 관련, 주 의원은 자신의 소속 정당 선배였던 강신성일 전 의원이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데,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1심 선고 뒤 8개월 동안 2심 선고도 없다며 '여당 실세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다뤄서는 안된다'는 국회 관계법을 들어, 주 의원의 발언이 "법사위 명예를 떨어 뜨리고 재판부를 모독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건희 삼성회장 증인 채택과 관련 주성영 의원은 '법사위원이 부를 자격이 있느냐'고 해서, 저나 법사위원들은 너무 창피했다"며 "재벌한테는 고양이 앞에서 쥐같이 하면서 (오늘) 대구 고법원장을 상대로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그는 또 "더구나 주성영 의원은 고향에 왔다고 양보해서 먼저 질문을 하도록 해줬는데, 이렇게 법사위의 품격을 떨어뜨린 것에 대해 동료 법사위원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며 "위원장도 주 의원의 발언을 제지하는 것이 옳았었다"고 지적했다.

30여분간 국정감사가 중단됐다가 다시 속개된 뒤, 주 의원은 "대구에 와서 당연히 해야할 국감 활동이지만, 의사 진행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부끄럽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아름다운 전통'은 오후에 열린 대구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이어졌다. 안상수 위원장은 역시 같은 내용으로 주성영 의원을 소개했고, 주 의원이 또 첫 질의자가 됐다. 게다가 이번에는 오전 국감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 의원에게 국점감사 사회권도 넘겼다.

안 위원장으로부터 위원장석을 물려받은 주 의원도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지난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마했고, 대구지역에서 광범위한 존경을 받고 계시는 조순형 (민주당) 의원부터 질의하겠다."

조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서울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주성영의 '아름다운 전통'... "우리 지역이야, 술 한 잔!"

'아름다운 전통'이 법사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성영 의원은 나름의 '아름다운 전통'을 몸소 실천해왔다.

1년 전인 2005년 9월 22일 대구 고검, 지검 국정감사. 주성영 의원은 같은 당의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과 함께 점심 때부터 동료 의원들에게 '대구의 밤 문화를 보여주겠다', '광란의 밤을 보내자' 등의 진한 표현을 써가며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뒤, 주 의원 등은 그날 밤 기어코 열린우리당 의원 4명과 대구지검 검사 3명을 이끌고, 대구 모호텔 지하 L칵테일바로 갔다. "다른 의원들도 자기 지역구에 다른 의원들이 오면 그렇게들 한다"는 '아름다운 전통'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끝난 뒤 피감기관 간부들과 폭탄주를 마시는 등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특히 더 큰 문제는 그 술자리에서 주성영 의원이 여종업원들에게 차마 입에 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의 심한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 "폭탄주 없는 건강한 국회를 만들어 '청정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국회의원들이 발족한 '폭소클럽'(폭탄주 소탕클럽)에 가입했던 주 의원은 그날 술자리에서 직접 폭탄주를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권했다고 한다.

당시 주 의원은 피감기관과의 술자리나 여종업원들에게 했던 폭언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 채, "L바에 내려갔을 때 주위사람들에게 미안해서 한 차례 욕설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성적' 욕설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아름다운 전통'이 매번 아름답게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1년이 지난 뒤 2006년 대구 고검, 지검 국정감사가 끝났지만, 주 의원은 피감기관 간부나 다른 의원들을 데리고 폭탄주를 마시러 가지 않았다.

이날 법사위원들은 국감이 끝나고,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자 마자, 곧바로 전세버스에 올라타고 다음 날(20일) 국감이 열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지난해 문제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한 여당 법사위원은 국감 직후 기자와 만나 "오늘은 아예 술 근처에도 가지 않고 곧바로 부산으로 떠날 것"이라며 1년전 아픈 기억을 되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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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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