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낙월도의 모습김준
낙월도가 이처럼 번성한 것은 젓새우잡이 때문이었다. 한때 낙월도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젓새우는 전국 새우젓시장의 50%를 차지해 가격을 좌우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멍텅구리배'라고 불렸던 새우잡이배들이 1980년대에는 100여척에 이르렀다.
그때 낙월도는 돈으로 흥청거렸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새우젓이 연간 6억여 원이나 됐다. 소득이 높은 부촌이었다. 인생의 쓴맛을 본 팔도 사내들이 절망과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았던 곳이었다.
멍텅구리배는 일이 고되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너 말 안 들으면 새우잡이배에 팔아버린다'는 농담이 생겼겠는가. 이렇게 일이 고되다보니 뱃사람을 구하는 것이 '일'이었다. 물때에 맞춰 하루에 4번씩 그물을 걷어 올려야 했기 때문에 조각난 새우잠을 자야 했다.
모기장처럼 촘촘한 70~80m에 이르는 그물을 걷어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다. 특히 멍텅구리배와 그물이 이동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10여m는 족히 될 2톤에 달하는 닻을 끌어 올릴 때는 모든 사람이 용을 써야 바다 속 펄밭에 처박힌 것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물에 잡힌 것들은 새우만 아니라 해파리·반지·조기·갈치새끼·갯가재 등이다. 새우만 추려내고 쓸 만한 잡어들을 골라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운반선이 뭍으로 잡어들을 가져오면, 낙월도에 남아있는 여자들이나 노인들이 이 일을 맡아서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이 힘들다 보니 멍텅구리배를 타는 사람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뜨내기가 대부분이었다. 망망한 바다에서 조류에 따라 움직이며 햇살을 이겨내야 했던 이들을 관리하는데 구타와 협박이 동반되기도 해 새우잡이배를 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보이던 사람이 사라지면 새우잡이배에 팔렸다는 소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