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쓰길래 웅담도 아니고 용담일까?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68] 용담

등록 2006.10.27 14:54수정 2006.10.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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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애수'라는 꽃말을 가진 용담(龍膽)은 뿌리의 쓴맛으로 인해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곰쓸개보다도 더 쓰다고 하여 상상의 동물 용의 쓸개를 비유해서 '용담'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요.


쓴 것이 몸에 좋다고 하는데 용담 역시도 쓴맛을 제대로 하는가 봅니다. 열을 내리고 염증을 삭이는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위와 관련하여 위염이나 위산과다를 없애주어 소화불량이나 식욕부진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가을에 뿌리를 잘게 썰어 소주를 2~3배수 넣고 설탕을 1/3가량 넣어 3개월 뒤에 마시면 정장, 강장제로도 좋다고 합니다.

김민수
금강산에 마음씨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답니다. 농부는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들짐승들을 위기에서 구해주곤 했답니다. 그가 도와준 동물들 중에는 산토끼도 있었지요. 어느 겨울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토끼 한 마리가 눈을 파헤치고는 어느 식물의 뿌리를 캐서는 열심히 핥아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뭘 그리 맛나게 먹니?"
"아, 제가 먹으려는 게 아니구요, 우리 주인이 병이 났는데 이 뿌리가 좋다고 해서 맞나 확인하는 중입니다."

토끼가 돌아간 후 농부는 호기심에 남은 뿌리를 맛보았습니다. 얼마나 쓴지 토끼가 자기를 놀리려고 그랬나보다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꿈 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낮에 보았던 그 토끼가 자신이라며 그동안 약한 짐승들을 도와준 보답이니 그 뿌리들을 모아 약으로 팔라고 했답니다. 후에 농부는 그 뿌리를 캐다 팔아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 뿌리가 바로 용담의 뿌리였다고 합니다.

김민수
제주에 있을 때에는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흰그늘용담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육지에 와서야 보라꽃을 피우는 용담을 만났는데 줄기가 길어 억새에 기대어 소담스러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막내와 함께 가을꽃 산행을 떠난 날 풀섶에 숨어 있는 꽃 찾기 놀이를 했습니다. 물매화도 만나고 쇠서나물도 만나고 왕씀배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용담도 만났지요. 몇 개체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여전히 풀섶에서 꽃을 피우는 야생의 용담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보라색이 주는 강렬한 느낌, 꽃들 저마다 자기를 돋보이기 위해 자기의 색깔을 가집니다. 단지 멋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과 직결이 되지요. 이른 봄에 노랑꽃이 많은 것도 곤충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고, 울긋불긋 가을에 피어나는 꽃들 중에서 유난히도 보랏빛이 많은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울긋불긋한 색깔들 사이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색깔 중에서 보라색만큼 강렬한 빛은 없는 것 같습니다.

김민수
따뜻한 가을 햇살과 높은 하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곤충들이 겨울준비에 분주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꽃이 귀한 시절이 되면 몇 개체 남지 않은 꽃들마다 주인공이 되어 손님을 맞이합니다. 용담꽃에 앉은 벌들은 꽃봉우리를 꼭 쥐면 그대로 꽃봉우리 속에 갇히게 됩니다.


어릴 적 아침나절 활짝 핀 호박꽃에 벌이 앉으면 얼른 호박꽃잎을 닫아 벌을 잡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과 더불어 지냈던 추억들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가을이면 산에 올라가 개암열매며 도토리와 밤, 버섯을 따서 식탁을 풍성하게 하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맛난 군것질을 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자연을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이라도 자연의 품에 안기면 심심해 하다가 이내 자연이 주는 놀잇감을 잘도 찾아냅니다. 용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활짝 핀 용담꽃을 두 송이 따서 강아지풀에 끼어 귀걸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쑥스러운 듯 시골길을 걸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보면서 그 언젠가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김민수
쓴맛이라면 나에게 물어보시길
온통 저 깊은 뿌리까지 쓰디쓴 인생이지만
가을바람에 허허로이 웃고 피어난다.
아무리 웃음이 헤픈 세상에 산다고 해도
아무나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들어있는 고뇌로 장문의 편지를 쓸 것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화들짝 피어나는 꽃,
편지는 무슨 편지야,
이렇게 피어나는 것이 편지지.
산전수전 다 겪어 더이상 쓴맛을 볼 일이 없다면
내 뿌리를 드리오리니 그 쓴맛이 헛되지 않토록
남은 삶, 단맛으로 살아가시길. (자작시 -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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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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