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포스트> 홈페이지의 국제문제 토론방에 올라온 북핵 해법 관련 논술 질문.<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학가와 매스컴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워싱턴 포스트> 홈페이지의 국제문제 토론방(http://blog.washingtonpost.com/postglobal/debate/korea/)에 실려 있는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글이다.
이 글들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국제문제 저널인 '옥스퍼트 인터내셔널 리뷰(Oxford International Review, OIR)가 운영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홍콩대학에서 북핵해법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한 뒤에 최우수글을 뽑아 <워싱턴 포스트> 홈페이지 국제문제 토론방에 게재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온라인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OIR이 운영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에는 미국과 일본·중국·인도·스리랑카 등 해외 각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 6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OIR은 로즈·마샬·풀브라이트·트루먼 같은 학내 장학금과 다른 세계 유수의 글로벌 장학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발행된다.
연간으로 발행되는 OIR의 학생 편집자들이 이 리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와 학문적인 권위자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10월 9일)한 직후인 12일부터 개설된 <워싱턴포스트>의 국제문제 토론방에서는 현재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이유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는 이유 ▲북한 핵무기 개발로 인한 동북아 일대 핵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대책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학생들의 논술 내용이 게시되어 있다.
학생들 논술의 일부 내용을 요약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외교적 책임 회피하지 말고 직접대화 받아들여야"
질문1. 현 미국 정부가 북한의 대화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미국이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거부하는 이유는?
"북한은 미국을 자신들을 무너뜨리려는 교만한 초강대국으로 보며, 미국은 북한을 핵무기를 가지려는 위험한 테러리스트 정권으로 본다. 양자간의 오랜 불신이 가장 큰 문제다." (Hu Ying, 홍콩)
"미국 정부는 북한의 직접대화 제안을 받아들여 외교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 지역에서 북핵 이슈를 우리 자신을 위해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XU Zheng Jie, 중국)
"북한의 핵무기는 지역보다는 전세계의 문제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힘의 과시보다 관련국들이 문제해결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riyanwada Chathurangani Herath, 스리랑카)
질문2.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권(initiative)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부작위(inaction)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북핵문제 해결의 책임을 지역내 관련국들이 공유함으로써 합의사항을 좀더 공고하고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6자회담 관련국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은 양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Joseph Fulginiti, 미국)
"북핵 문제를 지역 관련국들에게 맡기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미국의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관련국들은 북한의 핵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내 세력 균형 속에서 평화가 유지되며 미국은 외부세력으로서 지역안정을 어지럽힐 뿐이다." (Song Yi, 중국)
질문3. :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핵무기로 무장할 경우, 한국·일본·대만도 핵보유 쪽으로 선회해 동북아 지역을 핵지뢰밭(minefield of nuclear weapons)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 핵확산을 막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나는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거부한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무가치한 행동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으며 아시아 스스로 지역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Moriwaki Chika, 일본)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군사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국제적 지지 속에 경제제재를 계속하려 할 것이고 북한은 그럴수록 핵무기 개발에 집착할 것이다." (Yan Qin Xue, 중국)
OIR으로부터 요청
이 작문시험의 문제를 낸 출제위원은 누구일까?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한국의 전 대통령이 제시한 문제를 가지고 일종의 '온라인 백일장'을 치른 셈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여름 김 전 대통령에게 옥스포드대학의 OIR으로부터 정중한 요청이 하나 들어왔다. OIR에서 운영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 참석자(미국·일본·한국·중국·인도 등지에서 온 대학원생 60여명)들에게 김 전 대통령이 동아시아 문제에 관한 작문 주제를 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인 뒤에 우수한 글을 선정해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영국 캠브리지대학 등 10여개의 주요 대학으로부터 받은 명예박사학위 말고도 러시아 모스크바대 외교대학원에서 정식으로 정치학 박사학위와 교수 자격증을 받은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앞에서 제시한 북핵 문제에 관한 세 가지 작문 문제를 내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예정대로 그 문제를 갖고 토론을 벌인 끝에 논술을 썼고 그 가운데 우수한 글이 <워싱턴포스트> 국제문제 토론방에 실린 것이다.
"북한은 철없는 초등학생과 같기 때문에 북한이 원하는 관심을 보여준다면 옆자리 여학생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Tyler Custis, 미국)이라는 '미국식 해법'에서부터, "다른 나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의 국내 문제이며 스스로 해결하도록 맡겨두어야 한다"(Lai Yun Yi, 중국)는 '중국식 해법'에 이르기까지 북핵 문제를 보는 각국 대학생들의 다양한 시각들이 있지만, 일관된 흐름은 역시 초강대국인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북·미 직접 대화는 김 전 대통령의 일관된 지론이다.
미국 유력신문의 국제문제 토론방에서는 영국의 명문대학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전세계 우수한 학생들이 김 전 대통령이 출제한 논술시험의 '북핵 해법' 답안을 갖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조선'이라는 북한식 제호를 가진 국적 불명의 신문은 사설까지 동원해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고 써대고 있는 이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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