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진로와 정계개편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김근태 의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한길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통합기구 설치는 유보됐고, 정계개편 논의는 심도있게 체계적으로 질서있게 해나간다는 원칙만 확인했다. 난항은 불가피하다. 분기점은 내달 2일로 예정된 의원총회가 될 것이다.
언론의 진단은 이렇다. '혼미'라는 진단이다. 하지만 아니다. 가닥은 이미 잡혔다.
정동영, 김근태 전·현직 의장에 이어 천정배 의원마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 대주주 간의 교통정리는 끝났다. 주주총회를 열어봤자 달라질 건 별로 없다. 남은 문제는 거수 절차를 그럴 듯하게 가다듬는 일이다.
미세 조정이 남아있긴 하다. 소액주주들이 주주대표소송을 거는 걸 피하려면 의결 요건 못잖게 의결 내용을 잘 관리해야 한다. '분식'의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이게 문제다. 원천적으로 '분식'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감출 뿐이다. 그러다보니 더 짙은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동영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성공하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민주세력의 분열이 초래된 데 대해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김근태 의장은 여권의 비극의 씨앗은 분당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천정배 의원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음을 고통스럽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새겨듣고 갈라서 보자. 열린우리당 창당은 실패했다고 했다. 그리고 천정배 의원을 뺀 두 사람은 그 이유를 분당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다시 합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가출'과 '귀가'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분당 탓?
하지만 이들의 고백을 좀 더 들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동영 전 의장은 창당정신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시대정신을 담고 있고, 돈과 지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와 정당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고 상당히 진전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천정배 의원도 신당 창당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열린우리당의 정치개혁 성과 계승을 꼽았다.
따져보자. 먼저 시대정신. 분당, 즉 열린우리당 창당의 명분 가운데 하나가 시대정신의 구현이었다. 이른바 낡은 정치의 청산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여전히 이 시대정신이 유효하다고 했다. 시대정신의 구현 주체가 열린우리당이란 주장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민주세력 분열의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했다.
민주세력의 재결집과 낡은 정치세력과의 절연,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치를 한데 묶고 있다.
다음은 정치개혁. 천정배 의원이 강조한 '열린우리당의 정치개혁 성과'는 정동영 전 의장이 말한 '돈과 지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와 정당'이다. 진성당원제와 기간당원제 도입이 그 사례일 것이며, 당정분리도 그 축에 낄 것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지금 이 '정치개혁의 성과'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기간당원제를 버리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로 했고, 김근태 의장은 역사상 가장 무력한 여당이 된 이유를 당정분리에서 찾았다.
그 뿐인가. 최종적으로 열린우리당 사수파를 버리면 '지역'으로 다시 걸어들어가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
궁색하고 어지럽다. 분당의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분당의 명분을 통째로 버리지는 않는다. 판단이 이렇다면 '계승과 혁신'으로 길을 잡는 게 순리 같은데 '청산'에 발을 담근다.
과반정당이 못한 민생챙기기 통합하면 저절로 되나
분당 얘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 하자. 따로 짚을 게 남아있다.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은 이유가 오로지 분당 때문이라고 보는 건 착각이다.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천정배 의원 같은 경우는 "중산층의 삶은 여유를 잃었고 더 많은 서민들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렸다"며 신당 창당의 명분을 민생개혁정치 실현으로 꼽았다. 김근태 의장도 일찌감치 뉴딜정책을 선언했고, 범여권 통합의 명분을 평화세력 결집과 함께 번영세력 연대로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지 못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었으니 앞으로 잘 챙기겠다고 하는 데에야 할 말이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꼭 범여권을 통합해야만 실현시킬 수 있는 민생경제정책은 뭔가? 집권정당이자 원내 과반정당이 하지 못한 민생 챙기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비전이 없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조정에 달려있다. 다른 정책을 제물로 바쳐 민생정책을 챙기는 식이라면 너무 단순하다. 김근태 의장의 뉴딜정책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재벌개혁과 일자리 창출의 조정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탄핵 역풍으로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서도 민생챙기기에 실패한 이유가 4대 개혁입법에 올인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4대 개혁입법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올인하는 전략을 씀으로써 민생입법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오로지 개혁을 외치더니 다시 민생을 읊조린다. 그래서일까? 당시엔 민생입법을 바리케이드 삼아 4대 개혁입법 반대 기류가 형성되더니 지금에 와선 4대 개혁입법(사학법)의 장벽에 막혀 민생입법이 저지되고 있다.
널뛰기 행보라고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극에서 극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중요한 건 과정을 생략한다. 극복과정이다. 극복을 해야 할 때 선택을 한다. 그러니 치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하면 청산주의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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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해야 할 때 선택하고 비전 내놔야 할 때 청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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