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97회

제노사이드

등록 2006.10.30 17:27수정 2006.10.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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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는 잠시 동안 보더아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음속으로 급하게 정황을 정리해 나간 아누는 금방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금 내 눈 앞의 보더아는 내가 알던 보더아가 아니라 내가 만난 ’가이다’와 마찬가지로 ‘하쉬’ 그 자체의 생명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시공간을 초월해 보든 상황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미 아누의 마음을 읽은 보더아가 대뜸 대답을 하자 아누는 저도 모르게 움찔 놀라고 말았다.

-너희들의 다음 세대에서는 하쉬의 위기가 좀더 급박하게 다가왔고 그로인해 먼 거리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기적의 기술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들이 보낸 신호를 포착하여 가이다가 하쉬의 생명체가 살아 갈수 있는 최적의 혹성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탐사선이 너희들을 앞질러 도착할 것도 미리 예측하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엄밀한 계획을 세워 대규모 탐사대를 가이다에 보냈다.

아누는 나름대로 하쉬와 가이다간의 거리와 시간을 감안하여 그들이 어느 시기에 도착했는지를 계산해 보았다. 만약 후손들이 앞서서 도착했다면 아무리 정착하는 것에 실패하였다고 하더라도 뒤에 도착할 선조들을 위해 가이다에 그들이 자취를 남겨 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누는 그런 징후를 가이다에서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은 사소한 부분에서 잘못된 것이었다. 우주의 법칙을 아직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소한 오류는 엄청난 시간의 차이를 가져왔고 그들은 예측했던 시기보다 훨씬 일찍 가이다에 도착했다. 그 시기의 가이다는 지금과는 다른 생명이 살고 있었고 그 생물들은 젊은 가이다가 내뿜는 거친 숨결에 적응하느라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보더아의 말에서 마치 시구(詩句) 같은 은유를 이해하지 못한 짐리림이 급히 끼어들었다.

-좀 더 명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가이다는 일종의 격변 상태였고 가이다에 살고 있는 생명들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그렇기에 탐사대는 그 환경을 극복해야 했고 앞선 기술에도 불구하고 큰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가이다의 생명이었다. 가지고 간 식량이 떨어졌지만 우리는 가이다의 땅에 하쉬의 양식하나 가꿀 수가 없었다. 가이다의 생명이 철저히 우리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처절하게 말라죽어갔고 곧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아누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보더아의 말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그들이 처한 운명은 그보다 나을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실패한 사실은 하쉬에서는 미래의 일이지만 가이다에서는 과거의 일이다. 가이다의 미래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 가이다를 발견하게 되는 시공간의 운명을 타고나는 이 탐사선에 탑승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이다에서 나와 같은 생명 그 자체의 존재를 찾아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막막한 존재를 찾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아누가 조치하는 데로 가이다 주변의 상황을 탐색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관여 하지는 않았다.

보더아의 몸 주위에서는 어느덧 밝은 오렌지색의 오로라가 서서히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쉬의 위대한 생명을 더욱 더 돋보이게끔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알다시피 짐리림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가이다의 생명이 우글우글한 곳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건 최악의 상황이었고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닌 아누를 밖으로 내보내어 가이다의 생명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한편으로 당장 닥쳐오는 위협을 없애기 위해 주위에 있는 가이다의 생명을 ‘생명의 노래’로 끌어들인 후 몰살시켰다.

-제가 실패한다면 어쩔 작정이었습니까? 이대로 버텨볼 작정이었습니까?

아누는 갑자기 정중한 태도를 버리고 보더아에게 차갑게 말을 내뱉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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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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