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10회

영원 속으로

등록 2006.11.21 17:03수정 2006.11.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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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아닙니다. 저희로서는 생존이라는 문제가 걸린 큰일입니다.”

“내가 그렇게 해줄 까닭이 없다. 불만이 있으면 여기서 날 죽이든가 마음대로 해봐!”


“그렇다면 한번이라도 좋으니 신부가 될 수이의 후손을 만나 볼 수는 없겠습니까? 그런 연후에 거절한다면 아무 말로 안하겠습니다.”

남현수는 그 말에 분명히 함정이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분명 마르둑은 네가 거절 하지 못하리라 여기고 그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현수의 마음 한 쪽에는 묘한 자신감이 일고 있었다.

‘저들이 뭐라고 하던 내가 거부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상대는 아프리카의 여인이다. 내가 언제 흑인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긴바 있는가?’


남현수가 잠시 망설이자 마르둑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봐!”


“네!”

마르둑의 일갈에 뒤에서 목석처럼 서 있던 김건욱과 무와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당장 가서 남박사님의 신부님을 이리로 데리고 와라!”

“예!”

그러자 놀랍게도 김건욱과 무와이가 엄청난 속도로 벼랑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거니 짐작한 남현수는 차 조수석으로 들어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눈이라도 붙일 요령으로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건욱과 무와이가 무서운 속도로 벼랑 아래에서 올라왔다.

“차로 가시죠!”

남현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김건욱이 운전석에 냉큼 앉아 시동을 걸더니 벼랑을 향해 무작정 엑셀레이터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남현수는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차 세워!”

차는 그대로 절벽까지 가서 급경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처 안전벨트조차 매지 못한 남현수는 뭐든지 부여잡으려 마구잡이로 손을 휘저으며 앞으로 쏠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가누었다.

“으아아아아악!”

남현수는 마구 비명을 질렀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건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부서질 것만 같았던 차는 급경사를 미친 듯이 내려가 마침내 평지에 다다랐다. 잠시 동안 얼이 빠진 채 차안에서 내리지 못한 남현수는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신부가 될 분입니다.”

김건욱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흑인 소녀를 남현수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남현수가 잠깐 보기에도 나이는 상당히 어려 보였다. 흑인 소녀는 남현수를 쉽게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 금방 내려왔는지 마르둑이 서서히 걸어오며 박수를 쳤다. 남현수는 으르렁거리는 듯이 따졌다.

“이봐, 난 못해. 그리고 마르둑 당신과 있었던 일은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을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일에 대해서도 모두 말하고 난 더 이상 상관 않겠어.”

“언제 제가 남박사님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강요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말을 하던 안 하던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저 박사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난 못한다고 했다. 너희들이 완력을 쓴다고 해도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어. 자꾸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는 다른 것 같아. 그 기계 때문인가?”

남현수의 말은 조금씩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깐 이 소녀를 바라보시겠습니까?”

남현수는 마르둑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흑인소녀의 눈빛과 마주치면서 모든 것이 새카맣게 변해갔다.

‘내가 왜 이러지.’

남현수는 힘을 다해 마르둑을 돌아보았다. 마르둑은 약간 웃음을 띤 얼굴로 그저 남현수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망할 외계인.’

남현수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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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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