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사이로 국방부 건물이 보인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노태우씨는 대통령 후보 시절, 일본 군대 출신이 대부분이던 이른바 '군 원로'라는 사람들에게 6·25전쟁 기념관을 지어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전쟁을 기념한다니, 그것도 6·25전쟁을 기념한다는 게 어디 될법한 말인가?
참고로 말하면, 전제군주 시대의 서구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왕실의 존망이 전쟁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전쟁이었다. 모든 국력은 전쟁 준비에 집중되었다. 영국의 런던 교외에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에게 승리한 사실을 크게 부각하고 있다. 파리에는 나폴레옹 기념관이 있으며 스페인도 전쟁박물관을 만들어 전쟁을 통해서 영화를 누린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낡고 군국주의적인 생각이 지배한 전쟁기념관 건립
어쨌건 국방부에 전쟁기념사업회가 발족했을 때 난 사업회의 활동 방향과 전쟁기념관 건립 기조를 작성하는 책임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난 전쟁기념관을, '우리 민족은 참으로 위대하다'를 대전제로 삼아 민족의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민족정신 고양의 교육도장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전쟁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가슴 뿌듯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심한 민족이다, 전쟁도 한 번 일으켜 보지 못했고 전쟁준비를 전혀 안했던 허약한 민족으로서 강대국에 당해도 별수 없던 민족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며 살아온 분들이 전쟁기념관 건립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 중엔 군에서 존경받아온 분들도 있었는데, 곁에서 보니 정신과 행동양식이 대부분 식민사관에 찌들대로 찌든 경우가 많았다. 유럽의 선진국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당파싸움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각하라는 식으로 일제 식민사관에 세뇌된 사람도 있었다.
대전제와 기본 발상부터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어, 나는 그들과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기념관의 명칭 문제부터 의견이 달랐다. 그들은 당초 '6·25전쟁기념관'이란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여론이 워낙 좋지 않고 명분이 약하자 그냥 '전쟁기념관'으로 하기로 했다.
사업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는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고, 사회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조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이를 근거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너희들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는 식이었다.
기념관 건물 형태 논의에서도 갈등이 심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육군본부의 현재의 건물 뼈대를 그대로 두고 개보수해 건립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분들은 완전히 헐어버리고 웅장한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육군에서도 육본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당시 참모총장이 이런 의견을 종합해 사업회를 방문, 건의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기념관이 당시의 병원을 개조해 만든 것처럼, 일본군의 마구간이었고 육군본부 건물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허물고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백 번 옳았지만, 일은 그들의 각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업회는 반대의견에 부닥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로자문위원회'라는 걸 소집, 이들을 크게 대접하고는 사안을 처리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웅대한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다음, 이를 근거로 밀고 나갔다. 국가 재정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결과적으로 건설회사만 배불릴 일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옛 왕궁을 연상케 하는 권위주의적이고 웅장한 건물을 짓고자 하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처럼 실용적인 현대식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식화하는 원로자문위원회 검토라는 요식절차를 또다시 밟아 자신들 뜻대로 결정해버렸다. 기왕 있는 왕궁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새삼스럽게 서구의 옛 궁전처럼 본 건물 양옆으로 회랑을 길게 뻗어 나오게 한 것이라든지 건물 정면에 연못을 파게 만든 것 등 참으로 못마땅한 설계였다. 그렇지만 그대로 추진되었다.
나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민족혼을 느끼고 민족의 위대성에 감동받는 기념관을 꿈꿨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 난 사표를 내고 나왔다.
당시 젊은이들의 행태로 보아, 민주화가 이룩되면 전쟁기념관이 박살나고 무너질 것이라 여겼는데 아직 건재하다. 잘못된 게 분명한데도 법적 뒤받침까지 받아가며 고쳐지지 않는 게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그러나 난 군사독재의 유물인 전쟁기념사업회법을 이제라도 폐기하고, 평화기념관이나 평화박물관 혹은 민족기념관으로 내용을 확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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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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