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동네 사람들
왕소희
바실나무. 동네 어귀에 있는 그 나무 밑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짜이를 나눠 마시곤 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람과 지니, 나를 둘러쌌다.
"오늘부터 삽 못 빌려줘!"
뚱뚱한 몸집의 바비는 귀퉁이가 부러진 삽을 가운데로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삽과 곡괭이 물통 등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맘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두레박은 찌그러지고 삽은 부러지고! 아무 이익도 없는데 계속 빌려줄 수 없어."
"물감을 푼다고 빌려 간 접시들도 다 내놔! 그림을 그리든지 말든지."
바비 뒤에 서있던 깔루 엄마가 나섰다. 매일 아침 물 때문에 바비와 싸움을 벌이는 그녀도 오늘 만은 바비편이었다.
"그리고 너희들. 저번에 우리 미누가 밥해준 값으로 돈을 좀 더 내야겠어. 생각해보니 너무 적어."
바보 요리사 미누네 엄마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우리 미누도 데리고 다니지마.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들의 태도에 우리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이중에 누구하나 언덕에 와서 일을 도와준 적 있어요? 한국인 여행자들이 와서 일해줄 때 미안하지도 않나요? 이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란 말이요! 그런데 삽이 조금 부러졌다고 아예 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계속 합니까!"
람도 맞받아 소리를 쳤다.
"아무 상관없는 여행자들도 저렇게 열심인데. 뭡니까! 당신들은!"
화가 난 그는 플라스틱물병을 장작더미위로 집어던져 버렸다. 뚜껑이 날아가고 점심 때 먹으려고 담아둔 물은 콸콸 쏟아져 버렸다. 물병도 바비것이라 가져가면 안됐다.
"이봐, 자네."
까까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난 메이와 지니에게 집세를 좀 더 받아야겠는데. 저번에 지불한 걸로는 부족해."
"아, 제발!"
지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를 쳤다. 까까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 지니는 그에게 딸처럼 정을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까까 할아버지를 의지해왔었다. 실망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를 내리쳤다. 모든 게 엉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