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나무 아래서 벌어진 '싸움'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29

등록 2007.01.16 13:10수정 2007.01.16 14:11
0
원고료로 응원
왕소희
 심각한 동네 사람들
심각한 동네 사람들왕소희
바실나무. 동네 어귀에 있는 그 나무 밑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짜이를 나눠 마시곤 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람과 지니, 나를 둘러쌌다.

"오늘부터 삽 못 빌려줘!"


뚱뚱한 몸집의 바비는 귀퉁이가 부러진 삽을 가운데로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삽과 곡괭이 물통 등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맘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두레박은 찌그러지고 삽은 부러지고! 아무 이익도 없는데 계속 빌려줄 수 없어."

"물감을 푼다고 빌려 간 접시들도 다 내놔! 그림을 그리든지 말든지."
바비 뒤에 서있던 깔루 엄마가 나섰다. 매일 아침 물 때문에 바비와 싸움을 벌이는 그녀도 오늘 만은 바비편이었다.

"그리고 너희들. 저번에 우리 미누가 밥해준 값으로 돈을 좀 더 내야겠어. 생각해보니 너무 적어."
바보 요리사 미누네 엄마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우리 미누도 데리고 다니지마.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들의 태도에 우리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이중에 누구하나 언덕에 와서 일을 도와준 적 있어요? 한국인 여행자들이 와서 일해줄 때 미안하지도 않나요? 이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란 말이요! 그런데 삽이 조금 부러졌다고 아예 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계속 합니까!"
람도 맞받아 소리를 쳤다.


"아무 상관없는 여행자들도 저렇게 열심인데. 뭡니까! 당신들은!"
화가 난 그는 플라스틱물병을 장작더미위로 집어던져 버렸다. 뚜껑이 날아가고 점심 때 먹으려고 담아둔 물은 콸콸 쏟아져 버렸다. 물병도 바비것이라 가져가면 안됐다.

"이봐, 자네."
까까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난 메이와 지니에게 집세를 좀 더 받아야겠는데. 저번에 지불한 걸로는 부족해."

"아, 제발!"

지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를 쳤다. 까까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 지니는 그에게 딸처럼 정을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까까 할아버지를 의지해왔었다. 실망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를 내리쳤다.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축제때 동네 사람들 모습
축제때 동네 사람들 모습왕소희
그때 멀리 남인도에서 친구가 찾아왔다. 붉은 두건에 반짝거리는 거울 조각이 붙은 초록빛 치마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좋겠다. 바람이 좀 많이 불긴 하지만"

그녀는 이곳 생활에 지친 나에게 평화의 기운을 나눠주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언덕 위 무너진 사원으로 올라갔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를 마주보고... 그래 이제 손바닥을 이렇게 맞대고..."

동그란 하늘 아래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또다시 구름이 흘러갔건만 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성벽근처에서는 원숭이 선생들이 흥분해서 끽끽거리고 있었다. 마치 나처럼.

'너무 실망이야.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 수 있지? 뭐 하러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마음은 평화를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언덕위에서 기를 전해 받는데 실패한 우리는 사원에서 내려와 커다란 너럭바위에 대자로 누웠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였다. 우리는 그 노래를 시작으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노래들을 몽땅 꺼내 부르기 시작했다.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눈물도 조금 흘렀다.

'사람들은 생활이 걸린 문제니 이익을 따질 수밖에 없었겠지. 어쩌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했는지도 몰라.'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 순리 바이삽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 순리 바이삽왕소희
그날 오후 누군가 헐레벌떡 언덕위로 올라왔다. 순리 바이삽(brother)이었다.

"람! 지니! 메이!"
다른 마을에 갔던 그가 싸움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사람들한테 얘기 들었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곤 그는 도끼를 들고 쓸데없는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있잖아. 너희들은 내 형제 자매와 같아. 누구도 우리에게 그렇게 대해준적은 없어. 음악 쇼가 없어도 괜찮아! 언덕에 공원을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한텐 너희가 더 소중해. 그동안 먹고사는 게 바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군."

우리는 방글방글 웃으며 바이삽을 말렸다. 그래. 그래. 시간은 흘러가고 즐거움과 슬픔은 번갈아 가며온다. 그리고 지금 여긴 순리 바이삽이 있다. 그는 나의 형제다.

왕소희
 아기 깔루의 실물 사진 공개^^
아기 깔루의 실물 사진 공개^^왕소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행복닷컴, maywang.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행복닷컴, maywang.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