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웅
모든 가옥들은 절반 가량 철거된 상태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마을은 아무도 살고있지 않는 폐허 그 자체다. 마을을 내려다 보고있는 형세인 뒷편 야산엔 분묘이장 공고판이 꽂혀있는 몇 기의 묘지들이 남아있다.
봉분의 규모와 세월의 이끼가 묻어있는 비석, 어렵지 않은 몇 개의 비석문을 해석해 보면 수백 년 전 꽤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던 양반가문의 음택(陰宅)임을 알 수 있다.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는 마을의 작은 야산엔 이렇듯 몇 기의 묘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음택을 마련한 옛 사람은 수백년 후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분묘이장 공고의 번호판이 묘지마다 꽃혀있어 그 후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