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아카리 원작&나가토모 켄지 그림의 <바텐더>, 현재 4권까지 출간.학산문화사
사실 와인과 칵테일은 대중문화 작품 전반에 걸쳐서 대단히 자주 다뤄지는 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의 멋을 과시할 수 있는 액세서리로도 애용되지만, 그 자체가 인생을 이야기하고 대변하는 소재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될 것이다.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A Martini. Shaken, not stirred)"를 시리즈마다 반복하는 이 엉뚱한 첩보원은 즐겨 마시는 칵테일 종류만 9가지나 되는 마티니 광이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도 그의 소설 <레인보우 식스>를 통해 "첩보원이라면 007처럼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들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센스를 과시한 적이 있다.
그가 즐겨 마시는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3대1 비율로 혼합해 만들어지는 술이다. 그중에서도 '보드카 마티니'는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이 1930년대에 러시아에서 현역 첩보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보드카에 맛을 들이면서 마티니에 섞어 마셨다는 사례에서 유래했다.
만화 마니아라면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진'과 '베르무트'는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쫓는 '검은 조직'의 핵심 맴버라는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개성이 강하면서도 만들기도 까다롭기에, 그래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칵테일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본드도 과거에는 정말 너무나도 치명적인 유혹이지 않았던가. 이안 플레밍은 그 치명적인 유혹과 자신만이 느꼈던 독특한 맛을 전세계적인 유행코드로 완성한 것이다.
@BRI@그렇듯 007 시리즈를 보며 한껏 폼을 잡고 싶었던 남성들이 바텐더를 향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를 외쳤다면, 여성들은 톰 크루즈가 바텐더로 출연해 여성들로부터 진한 눈빛을 받았던 영화 <칵테일>을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 여성들이 그에게 주문한 칵테일은 그 유명한 '오르가슴'이다.
'오르가슴'은 달콤한 맛과 향이 일품인 가운데, 의외로 알코올 도수가 강력한 이질적인 맛이 동시에 스며들어 있기에, 특유의 자극적인 이름을 갖게 된 듯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은 미국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코스모폴리스탄'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 칵테일 또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례들은 칵테일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맛보다는, 단순히 유명작품의 유명 캐릭터, 유명 배우가 마셨기에 '동질감'을 느껴보려는 차원에서 유행했던 사례들인 것이다.
칵테일 그 자체보다는 마신다는 자체에서 '특별한 멋'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취향이지만, 한 잔의 술에도 자신의 개성을 듬뿍 담아본다면, 그 맛은 더욱 특별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칵테일, 즐기는 자와 만드는 자의 이야기 <바텐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