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29회

등록 2007.02.06 08:22수정 2007.02.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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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이랴! 고윤의 몸을 관통했던 은사절편이 머리 위쪽에서 그의 어깨 양쪽을 노리며 내리 꽂혔다. 지금 공격하는 의도는 명백히 두 가지였다. 설중행으로 하여금 혈간의 관에서 떨어지게 하려는 것과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노리는 부위는 주로 치명적인 머리와 목, 그리고 가슴을 제외한 곳이어서 잘리거나 찔려도 당장은 죽지 않을 곳이었다. 설중행의 두 발이 위로 솟구치며 상체와 하체가 포개졌다. 아래서 솟구친 칼날이 그의 등 아래를 긋고 지나갔다. 동시에 그의 두발은 내리 꽂히던 원추형의 은사절편 편두를 차내고 있었다.


@BRI@타탁--!

은사절편의 편두가 방향을 잃고 옆으로 튕겨나갔다. 정확하게 편두를 차내자 갑자기 허공에 옥청량의 목소리가 울렸다.

"폐(閉)!"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철등은 일제히 꺼졌다. 아마 백철등의 위력 앞에서도 설중행이 정확하게 은사절편의 편두를 차내자 시력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백철등의 불빛이 사라지자 설중행은 오히려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눈을 뜨나 감으나 시력을 잠시간 동안은 사용하기는 어려웠지만 똑같은 조건이라면 어두운 것이 훨씬 나았다.

허나 설중행은 발바닥에서 적잖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원추형의 편두는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바위를 차도 느끼기 어려운 통증을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통증을 느끼고 어물거릴 여유는 없었다. 그는 허공에서 비튼 몸을 옆으로 한 바퀴 돌리면서 혈간의 관 뒤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을 향해 두 팔을 펼치며 내리꽂혔다.


슈욱--!

그의 양 팔 소매에서 두 자루의 비수가 쏘아나갔다. 어둠 속에서 두 줄기 섬광이 내리꽂히자 다급한 신음성이 흘렀다. 백철등이 꺼진 이상 상대와 조건은 같은 셈이었다.


"헙…!"

어둠 속에서 몸이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설중행의 공격은 일종의 허초(虛招)였다.

타닥--- 우지직---

그는 비수가 채 상대를 쏘아가기도 전에 회수하며 몸을 날려 혈간의 관 위로 다시 올라섰다. 아니 올라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힘껏 밟았다. 반자 두께의 통나무로 된 관이 비명을 토했다. 관이 부서질 판이었다. 살아생전 그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았던 혈간의 시신이 이름도 모를 자에게 짓밟히고 있는 모욕을 당한다는 것은 옥청량은 물론이고 옥기룡과 단혁에게는 피눈물을 흐르게 만드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칫 저자가 시신을 훼손시킨다면 죽어서도 형님을 뵐 면목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옥청량이 노갈을 터트렸다.

"이놈---!"

우측에서 섬뜩한 예기(銳氣)가 휘몰아쳐 왔다. 허나 혈간의 관을 이용해 상대들을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던 설중행은 이미 몸을 날려 뒤쪽 창문이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허나 그가 채 뒤쪽 창문에 닿기도 전에 불쑥 주먹이 날아왔다.

"쥐새끼 같은 놈!"

이미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단혁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에 날아온 주먹은 피하기 어려웠다. 설중행은 상체를 급히 뒤로 젖히며 발을 차올렸지만 어깨와 무릎 쪽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밀려들었다.

피하기는 했지만 단혁의 주먹은 어깨를 스쳤고, 방어하고자 차올렸던 발은 오히려 실수였다. 단혁은 이미 설중행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던지라 여전히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설중행의 공격은 아주 간단하게 발로 설중행의 무릎 쪽을 차는 듯 막자 설중행에게는 더욱 심한 타격이 되었던 것이다. 설중행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쇄애액---!

아마 설중행이 잠시라도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면 사지가 잘리는 비운을 맞이했을 터였다. 그는 바닥에 몸이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다시 혈간의 관 위로 향했는데, 그가 떨어져 내렸던 바닥 위에는 어느새 세 자루의 칼날이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인지 모르지만 단혁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설중행을 잡는데 절대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 같았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탈출로를 봉쇄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 같았다.

"혼(混)…!"

설중행의 몸이 혈간의 관 위로 올라서기도 전에 옥청량의 음성이 고막을 뚫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백철등이 한 순간 일제히 켜졌다. 그러더니 금방 꺼졌는데 그것이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이쪽저쪽에서 연속적으로 켜졌다 꺼졌다 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 강렬한 빛은 정확히 설중행을 향하고 있었고,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짧은 순간에 움직이는 설중행의 움직임은 마디마디 끊어져 보였다.

"…!"

설중행은 당황했다. 차라리 조금 전처럼 백철등의 불빛이 자신을 향해 있어 시력을 잠시 잃어버린 상황이 오히려 나았다. 아예 불빛이 없거나 그런 상황이면 눈을 감고 감각을 최대한 살려 상대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눈을 뜨거나 감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불빛의 켜짐과 꺼짐에 신경이 쓰여 감각마저 둔해졌고 상대의 움직임을 감지하기도 어려웠다.

슈욱---!

날카로운 검날이 혈간의 관 위에 겨우 내려서던 설중행의 하체를 노리다가 허벅지를 긋고 지나갔다.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건 위험신호였다. 뒤이어 그 검날은 다시 설중행의 허리를 노리고 돌아왔는데 설중행의 흐릿한 망막으로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고,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츠윽-- 챙---

그는 자신을 노리는 검날을 소매 아래에 있는 비수로 막으며 발을 날리며 무상각을 펼쳤다. 마치 허공의 계단을 오르듯 그의 발은 한순간에 일곱 번의 움직임을 보였다. 어둠 속에서 금속이 부닥치는 소리와 함께 옷깃이 찢어질 듯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예리한 도기(刀氣)가 있었지만 설중행은 몸을 활처럼 휘며 피하고는 몸을 낮추었다. 혈간의 관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상대들의 의도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한 행동이었다.

"흡! 쥐새끼처럼 스며든 놈치고는 한 가닥 하는 놈이었군."

옥청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음성에는 노기와 함께 탄성이 섞여 있었다. 독 안에 든 쥐였지만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허나 옥청량은 또 다시 짤막한 명령을 내렸다.

"회(回)…!"

그것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를 본격적으로 생포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동시에 지금가지 고정되어 있었던 백철등의 위치가 바뀌며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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