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가 김종인의 작품 '선죽교의 봄'김종인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단심가(丹心歌)로 응수하던 정몽주의 얼굴이 길게 여운을 남겼다. 비장한 모습으로 단심가를 읊던 정몽주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두려움 없는 얼굴에 날카롭던 정몽주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 때 느꼈던 정몽주에 대한 연민의 정이 훗날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으로 하여금 대광보국승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대제학 겸 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에 추층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려 신원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때가 정몽주 죽은지 13년만인 1405년이다.
"고려의 녹을 같이 먹었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어도 나는 고려의 충신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이후의 이방원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마음을 가다듬으며 책을 펼치기 시작하자 서서히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왕의 학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 제왕위치지서(帝王爲治之序)와 제왕위학지본(帝王爲學之本)을 읽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며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권한 하륜의 속마음을 어슴푸레하게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인재를 분명하게 변별하는 것이 치국의 근본이요 간사한 무리들이 나라를 도둑질하는 술수와 간신이 임금을 속여 나라의 전도를 그르치는 오국(誤國)의 사례를 밝힌 격물치지지요(格物致知之要)의 변인재(辨人材)를 읽을 때는 무릎을 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통치하는 체제를 살펴서 덕과 형벌의 선후를 가리라는 심치체(審治體)와 의(義)와 이(利)의 분별을 추구하고 민정을 살펴서 전리(田里)의 실정을 알아야 할 것을 서술하고 있는 찰민정(察民情)을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 졌다.
성의정심지요(誠意正心之要)의 숭경외(崇敬畏)와 계일욕(戒逸欲) 그리고 수신지요(修身之要)의 근언행(謹言行)과 정위의(正威儀)를 읽고 제가지요(齊家之要)의 중배필(重配匹)과 엄내치(嚴內治)를 읽어 내려가던 방원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책장을 덮어버렸다. 이것이 추동에서 불어오던 남풍이다.
송악산 아래 수창궁에서 불어오는 북풍과 용수산 아래 추동 이방원의 사저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개경 십자로에서 맞부딪혀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훗날 골육상쟁으로 일컬어지는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이 제가지요(齊家之要)와 무관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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