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십자로에서 남풍과 북풍이 마주쳤을 때

[태종 이방원 50] 피바람을 예고하는 대학연의 열풍

등록 2007.03.05 16:17수정 2007.03.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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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이지만 학문을 좋아했던 이성계

개경에 대학연의(大學衍義) 바람이 불었다. 하나는 남풍이고 하나는 북풍이다. 전장(戰場)을 떠돌던 태조 이성계는 학문이 짧았다. 여진족을 물리치고 왜구를 쳐부수는 용맹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학문에는 머리가 숙여졌다. 이러한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하여 틈나는 대로 진중 막사에 학문이 깊은 부하를 불러들여 성리학을 강독했다.


@BRI@그가 머무는 진중이 곧 그의 숙소며 강의실이며 지휘부였다. 원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동북지방을 유린할 때도 함흥평야에 마련한 진중에서 유학을 강독했다. 아기바투(阿其拔都)가 이끄는 왜구를 지리산에 몰아넣고 섬멸하여 황산대첩(荒山大捷)이라는 무공을 세울 때도 성리학의 강독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는 아버지의 전장을 찾은 방원도 참석했다.

위화도에 머물며 "회군 하도록 윤허해 달라"고 최영 장군과 우왕에게 상소문을 올려놓고 기다릴 때 마음의 안정을 위하여 강독했다. 회군 주청이 거절되어 말머리를 개경으로 돌려 평양을 거쳐 개경으로 향하는 진중에서도 평생지우 이지란의 핀잔을 들어가며 강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은 무장이지만 자식들은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선비가 되라고 독려했다. 맏아들 방우와 막내아들 방원이 과거에 급제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집이 있는 개경에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아들들의 학습 진도를 챙겼다. 아이들로서는 모처럼 아버지를 보는 즐거운 날이 아니라 시험을 보는 두려운 날이었다.

즉위 이후에도 공부의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도승지(都承旨) 한상경으로 하여금 대학연의를 강독하게 했다. 이제는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이나 장졸들을 지휘하는 장군이 아니라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군주로서 덕목을 일깨워 덕(德)을 베풀고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다.

대학연의는 조선 최고의 제왕학 교과서


대학연의는 대학의 핵심인 3강령과 8조목을 세분해 사례를 들어 입증하고 제가의 설을 부연한 책이다. 대학연의 43권 12책 중에서 책 9와 10에 나오는 제가지요(齊家之要)의 중배필(重配匹)과 엄내치(嚴內治)는 태조 이성계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이것이 수창궁에서 불어오는 북풍이다.

재가지요 엄내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평생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중히 여겨 적실(嫡)과 첩실(妾)을 분별하라.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는 분명히 변별하라. 내치를 엄하게 해서 내신들이 충성하고 근실하며 정치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하라. 세자 교육은 나라의 근본이니 게을리 하지마라. 척속(戚屬)을 교육하여 겸손하고 근신하며 교만하고 방자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태조 이성계가 켕기는 것은 서자(庶子) 방석의 세자 책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1부인 소생의 아들들을 제쳐두고 강비소생 방석이를 세자로 세운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지만 지나간 일이다. 조금 일찍 이 책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흘러간 물이었다. 이제부터 닥쳐올 문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이성계의 과제였다.

방원은 하륜이 두고 간 대학연의를 펼쳤으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이 책장을 덮도록 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명멸하는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임금으로 등극한 아버지 이성계, 서모 강비, 아버지로부터 세자를 책봉 받은 서제 방석, 그리고 정도전의 얼굴이 그려지고 지워졌다.

정몽주를 생각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원

북한 화가 김종인의 작품 '선죽교의 봄'
북한 화가 김종인의 작품 '선죽교의 봄'김종인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단심가(丹心歌)로 응수하던 정몽주의 얼굴이 길게 여운을 남겼다. 비장한 모습으로 단심가를 읊던 정몽주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두려움 없는 얼굴에 날카롭던 정몽주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 때 느꼈던 정몽주에 대한 연민의 정이 훗날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으로 하여금 대광보국승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대제학 겸 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에 추층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려 신원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때가 정몽주 죽은지 13년만인 1405년이다.

"고려의 녹을 같이 먹었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어도 나는 고려의 충신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이후의 이방원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마음을 가다듬으며 책을 펼치기 시작하자 서서히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왕의 학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 제왕위치지서(帝王爲治之序)와 제왕위학지본(帝王爲學之本)을 읽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며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권한 하륜의 속마음을 어슴푸레하게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인재를 분명하게 변별하는 것이 치국의 근본이요 간사한 무리들이 나라를 도둑질하는 술수와 간신이 임금을 속여 나라의 전도를 그르치는 오국(誤國)의 사례를 밝힌 격물치지지요(格物致知之要)의 변인재(辨人材)를 읽을 때는 무릎을 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통치하는 체제를 살펴서 덕과 형벌의 선후를 가리라는 심치체(審治體)와 의(義)와 이(利)의 분별을 추구하고 민정을 살펴서 전리(田里)의 실정을 알아야 할 것을 서술하고 있는 찰민정(察民情)을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 졌다.

성의정심지요(誠意正心之要)의 숭경외(崇敬畏)와 계일욕(戒逸欲) 그리고 수신지요(修身之要)의 근언행(謹言行)과 정위의(正威儀)를 읽고 제가지요(齊家之要)의 중배필(重配匹)과 엄내치(嚴內治)를 읽어 내려가던 방원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책장을 덮어버렸다. 이것이 추동에서 불어오던 남풍이다.

송악산 아래 수창궁에서 불어오는 북풍과 용수산 아래 추동 이방원의 사저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개경 십자로에서 맞부딪혀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훗날 골육상쟁으로 일컬어지는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이 제가지요(齊家之要)와 무관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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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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