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의 사랑방 풍경(국립중앙박물관)이정근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는 구름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9년을 기다렸습니다. 그에 비하면 공(公)의 7년은 편안한 환경에서 2년이나 짧은 것이지요. 허허허."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다린 사람은 9년 전 함주 막사로 이성계를 찾아가 '조선건국사업'의 첫 삽을 뜬 정도전을 가리킨 것이다. 여기에서 하륜의 웃음 허허허는 허허허(虛虛虛)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 땅의 기층민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참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두 눈으로 확인한 정도전은 나주 유배가 풀리자 8년간의 유랑 끝에 함주 군막으로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때가 9년 전이다. 살아 있는 소나무에 혁명결의를 새기며 오늘을 기다려 왔다.
정도전은 유배와 투옥 그리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기다린 보람일까? 한고조(漢高祖)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張子房) 한고조를 쓴 것 이서일까? 자신의 청사진대로 혁명을 성공시켰다. 회진현에서 가다듬은 민본사상을 펼치기 위하여 혁명공약 편민사목(便民事目)을 발표하고 평생의 신념인 재상이 중심이 되는 신권정치를 펼치기 위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돌아가리다. 시간이 되시면 이 책을 여러 번 읽어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륜이 돌아가면서 남기고간 책은 대학연의(大學衍義)였다. 대학연의는 고려의 제왕들이 탐독했던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뛰어넘는 책으로 송나라 시대 진덕수가 대학(大學)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간추려 편찬한 책으로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백번도 더 읽었다는 조선 최대의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다.
후대에는 목판으로 찍어 대량 보급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나 접할 수 없는 책이었고 천기를 누설하는 금기의 책이었다. 조선 조 과거시험의 강경과(講經科)의 하나였으며 출제와 채점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 초기 이후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에게 필수 과목이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한 간원(諫員)을 비롯한 신하들이 임금의 잘못을 공박하는 바탕이 대학연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북한 화가들이 개성만을 소재로 한 그림 ‘개성, 어제와 오늘 전’은 서울 밀알미술관(02-3412-0061)에서 3월15일까지 전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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