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사거리에서 바라본 백악산. 뒤에 보이는 것이 삼각산이다.이정근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인왕산과 삼각산을 수차례 올랐고 목멱산에 올라 백악산을 정면으로 관찰했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백악산을 보았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극을 잉태한 핏빛 직감이었다. 흙냄새 맡으며 토굴에서 면벽수행한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백악을 주산으로 하였을 때 권좌를 놓고 형제와 숙질이 피를 흘릴 것만 같았다. 예방은 인왕이라고 확신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백악은 아니라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뿐만 아니다. 왕십리와 답십리 그리고 장한평과 마들평을 답사하여 도읍지 백성들의 식량문제도 점검했었다.
이성계는 머리가 무거워졌다. 정도전은 군신간의 파멸을 거론하고 무학대사는 환란과 골육상쟁을 들고 나오니 모두가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렇지만 천도 문제는 지체할 수 없었다.
"백악을 주산으로 하고 타락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 삼아 궁궐을 남향으로 앉혔을 때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현재의 자하문고개)에 바람이 거셀 것 같은데 서운관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성계도 반(半)풍수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는 반 풍수쟁이다. 수많은 장졸들의 생명을 지키며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공격과 방어로 전투에 승리하려면 풍수지리에 통달해야 한다. 수양제의 30만 대군을 무찌른 고구려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薩水大捷)이 대표적인 예다.
"협곡에 칼바람이 불어올 것 같습니다."
바람은 중국 바람이다. 통일전쟁을 벌이고 있는 대륙이 안정되면 거센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다. 하지만 서운관원은 칼바람의 무게를 계량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개경에 눌러있고 싶어 하는 기득권 세력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삼각산은 백두산에 맞닿아 있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던 국토의 등허리가 추가령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단숨에 내달리다 황해바다를 관망하는 곳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이 품고 있는 곳이 백악산이다. 삼각산을 그윽이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은 정도전이 말문을 열었다.
고구려는 요동벌판에서 말 달리며 대륙을 호령했습니다
"대사께서 왜국을 견제하자고 하시었는데 왜놈들이란 우리가 약해졌을 때 날뛰고 우리가 강해졌을 때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는 경박스럽고 야만스러운 종족입니다. 왜국은 우리의 적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북녘 땅입니다. 광활한 북녘 땅은 우리의 영토입니다. 고구려는 요동벌판에서 말 달리며 대륙을 호령했습니다."
잔서(殘暑)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오후, 따가운 폭염 아래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삼각산을 타고 내려오던 바람이 백악산 위에서 한 바탕 회오리 치더니만 가슴을 파고든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다. 상쾌하다.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정도전의 입에서 요동과 고구려가 튀어나오자 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일본을 견제하자는 무학대사의 주장이 갑자기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논리정연하게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정도전의 얼굴도 홍조를 띠었지만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성계와 무학대사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백악산을 바라보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정도전이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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