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정도전

[태종 이방원 58] 정통유학과 도참설의 한판 대결 7

등록 2007.03.20 15:41수정 2007.03.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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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륙민족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땅 대륙에서 기개를 펼치면 섬나라 왜놈은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백악과 인왕산 사이에 틈새가 있듯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원나라와 명나라가 쟁투를 벌이는 이때가 우리에겐 호기입니다. 대륙에 틈새가 있는 지금 이 때가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명나라는 천하의 한족(漢族)이라 자처하지만 중원을 변방민족에게 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영토를 우리가 되찾아야 합니다."

정도전의 말은 힘이 있었다. 신념에 꽉 차있었다. 인왕산에 호랑이던가? 호랑이가 정도전이던가? 인왕산 호랑이가 표효 하듯이 정도전의 말은 울림이 있었다. 군주로 등극한 이성계에게 뭔가를 용솟음치게 했다. 정도전과 대립각을 세우던 무학대사 가슴마저 뛰게 하였다.


정도전은 불과 5개월 전. 명나라를 방문하여 황제를 알현하고 돌아왔다. 금릉은 평온했지만 변방은 어수선했다. 특히 요동지방은 질서가 문란하고 전쟁 냄새가 물씬 풍겼다. 군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수레가 길을 메웠고 동원된 군사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백성들은 20년 이상 지속된 전쟁에 지쳐 무기력했고 주원장은 전쟁피로에 젖어 있었다.

"의문은 송도에 돌아가 소격전에서 풀겠다. 종묘가 들어설 자리로 안내하라."

이성계의 결심은 순간이었다. 계룡산에서 출발한 여정이 무악을 돌아 인왕을 거쳐 백악에 이른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정은 단칼이었다. 소격전은 구실이었다. 소격전은 국가적인 재난이나 경사를 당하였을 때 효과적으로 재초를 집행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미신스럽다는 성리학자들의 비판에 이성계도 공감하고 있었다.

서운관원은 어리둥절했다. 궁궐이 들어앉을 주산이 결정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어느 위치가 종묘 자리란 말인가? 정전(正殿) 왼쪽에 종묘가 들어서고 오른쪽에 사직이 들어서는 것은 서운관원의 기본 상식이었지만 주산(主山)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어디를 말한단 말인가?

도참을 물리치고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다


조아리고 있던 머리를 살짝 들어 이성계를 바라보니 맞은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종묘자리다. 정도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인왕산과 백악산을 놓고 대결을 벌렸던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승부는 정도전의 판정승이었다. 이로서 무악산을 들고 나와 왕의 측근으로 부상하려던 하륜은 주저앉았고 무학대사는 국정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인왕산에서 내려와 종묘자리를 살피던 이성계는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무학대사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왕산이 물 건너갔음을 의식 한 것이다. 이성계는 가벼운 마음으로 남경을 떠났다. 수수팥떡을 꽂이에 꿰어놓은 듯 하다하여 돌곶이라는 이름을 얻은 돌곶이 마을을 지나 마들평에서 하룻밤 유숙했다.


"마들평에 말을 먹이면 만마(萬馬)를 먹일 수 있겠구나."

다음날 아침 인수봉과 도봉산을 바라보던 이성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말(馬)은 기동력의 상징이다. 원나라가 세계의 정복자로 나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말이다. 금릉에 근거지를 마련한 명나라가 원나라를 북쪽 변방으로 몰아넣는데도 말이 공헌했다. 말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당시 최대의 군수물자였다. 이러한 말 때문에 이성계가 명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노원을 출발한 태조 이성계는 양주 회암사에 들러 승려들에게 푸짐한 식사를 공양했다. 노구를 이끌고 천도 후보지에 대한 자문에 응해준 무학대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것은 왕사가 천거해준 후보지를 채택하지 못한 미안함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회암사를 떠난 임금일행이 풍천(楓川)에서 유숙하는데 좌시중 조준이 과로로 쓰러졌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단련된 체력이었지만 신하들에겐 무리한 강행군이었다. 임금이 타는 견여(肩輿)를 내주어 조준을 먼저 개경으로 보내고 뒤따라 개경에 돌아왔다. 돌아온 임금에게 도평의사사에서 상신의 글이 올라왔다. 오늘날의 현장답사 보고서다.

"옛날부터 임금이 천명을 받고 일어나면 도읍을 정하여 백성을 안주시켰습니다. 요나라는 평양(平陽)에 도읍하고, 하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였으며, 상나라는 박(亳)에, 주나라는 풍호(豊鎬)에, 한나라는 함양(咸陽)에, 당나라는 장안(長安)에 도읍하였습니다. 도읍지는 처음 일어난 땅에 정하기도 하고 지세(地勢)의 편리한 곳을 골랐습니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혹은 합하고 혹은 나누어져서 각각 도읍을 정했으나 전조 왕씨가 통일한 이후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자손이 서로 계승해온지 거의 5백 년에 천운이 끝나 망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큰 덕과 신성한 공으로 천명을 받아 의젓하게 한 나라를 두시고 또 제도를 고쳐서 만대의 국통을 세웠으니 마땅히 도읍을 정하여 만세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윽이 한양을 보건대 안팎 산수의 형세가 훌륭한 것은 옛날부터 이름난 것이요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거리가 고르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영구히 도읍을 정하는 것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까 합니다."-<태조실록>


도당을 접수한 정도전, 자신의 정책을 반영시키다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이정근
도당(都評議使司)의 뜻이었지만 정도전의 뜻이었다. 도당은 고려조에 연민의 정을 갖고 있는 수구세력과 혁명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한양천도 문제를 기화로 정도전이 평정한 셈이다. 재상정치를 꿈꾸는 정도전이 도당을 접수한 것이다.

한양천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와 좌복야(左僕射) 김주, 전 정당문학 이염, 중추원학사 이직을 판사(判事)로 임명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인왕산에서 돌아 온지 보름만이다.

이성계가 천도문제를 서두른 것은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개경인들의 시선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지만 핵심은 차기였다. 새로운 왕조가 태어나면 새로운 도읍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려를 뒤엎어 서슬이 퍼런 자신도 신하들의 저항에 부딪혀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데 권위가 떨어진 세자 방석이 천도문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성질이 급한 이성계는 판문하부사 권중화, 판삼사사 정도전, 청성백 심덕부, 참찬문하부사 김주, 좌복야 남은, 중추원 학사 이직 등에게 한양을 답사하여 종묘사직과 궁궐, 시장, 도로의 터를 살펴 보고하라고 명했다.

권중화가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여 도면과 함께 바쳤다. ‘전조 숙왕(肅王) 시대에 경영했던 궁궐 옛터(현 청와대자리)가 너무 좁아 그 남쪽에 해방(亥方)의 산을 주맥으로 하고 임좌병향(壬座丙向)을 궁궐터로 정하였습니다. 또 그 동편 2리쯤 되는 곳에 감방(坎方)의 산을 주맥으로 하여 임좌병향에 종묘의 터를 정하였습니다. 오늘말의 경복궁과 종묘 밑그림이다.

고려의 패망원인을 불교에서 찾은 정도전은 성리학적 입장에서 철저하게 척불숭유(斥佛崇儒)정책을 신도에 관철시켰다. 종묘사직(宗廟社稷)과 궁궐을 지은 다음에 손수 정전 이름을 지어 헌액 하였다.

성곽을 쌓고 4대문을 건립하면서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4대문 이름(興仁門, 敦義門, 崇禮門, 弘智門)에 원용하였고 보신각(普信閣)을 세웠으나 선바위는 성(城) 안에 들여놓지 않았다. 정도전의 배불정책은 철저하여 승려들의 도성 출입마저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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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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