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항로>대원씨아이
"그는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
명쾌한 해답이다. 뒷받침하는 인재와 세력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던 유비를, 조조가 기어이 꺾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다. 평생에 걸쳐 실리를 추구하며 파죽지세로 천하를 얻으려 했던 조조였지만, 가는 곳마다 그를 막는 이는 언제나 유비였다.
유비는 결국 '혈통'이라는 근거로부터 비롯되는 정통성과 명분의 이점을 앞세워, 조조가 기어이 오르지 못한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누군가가 그랬다. 센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센 것이라고. 유비는 진정한 강자였던 셈이다.
다방면에 걸쳐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을 과시했던 조조였지만, 역사는 정치적인 명분과 필요에 의해 그에게 악역에 굴레를 씌운다. 수성형 인간 손권에게는 큰 매력이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악역을 맡기기에는 무게가 떨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악역이 거대해야 주인공도 더욱 빛이 나는 법. 그렇다면 그 악역은 조조가 맡을 수 밖에 없었다. 명분 좋아하는 당대의 선비들은 어쩌면 환관의 양자라는 그의 신분을 주목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조조를 재해석하며, 지구상에 둘도 없을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낸 <창천항로>는, 그에게 '유학자와의 전쟁'이라는 또다른 짐도 부여했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알려진 명의 화타도, 유학자로서 조조와 충돌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흥미로운 가설과 함께 말이다.
뜬구름 잡아 3만리, 무협과 권력의 활극 <창천항로>
2006년 10월, 드디어 국내에도 <창천항로>의 마지막 36권이 출간됐다. 재일교포 작가 이학인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작화를 맡았던 킹콘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무리한 것이다.
무협과 권력 활극, 파격적인 전투 묘사와 성애 묘사가 결합하면서, <창천항로>는 조조를 통해, 남성이 꿈꾸는 '완벽한 남성'에 대한 기나긴 강의를 마쳤다.
<창천항로>는 비단 조조 뿐 아니라, 주연과 조연 가림없이 모든 캐릭터에게 인격과 무게를 부여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난세를 살았으며, 자신의 삶에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에 대해, 피가 넘치는 전쟁판을 계기로 보여주려 노력한 것이다.
'최선'을 다했음은, 겉보기엔 무능력한 도망자로 그려지는 유비에게서도 느껴질 수 있다.
<창천항로>는 그의 인(仁)을 협(俠)으로 해석하는데, 작품 속에서도 유비는 순간순간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영웅으로서의 자각, 현실을 이겨내야만 하는 사명,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때때로 저질러야만 하는 냉혹 등,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그려지는 '거대한 그릇'에는 다양한 장점이 채워져 간다.
<창천항로>는 그가 '그릇의 크기'와 이유모를 인기만으로 조조와 맞상대하며, 판타지의 새 기원을 열어낸 조조를 긴장케 하는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도 주장하는 것이다.
<창천항로>는 그런 그에게 '천하인'의 호칭을 부여한다. 일생에 걸쳐 가장 위태로웠던 형주에서의 조조의 추격을 계기로, 자신의 협을 잃고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미쳐있던 유비는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천하"라고 선언하면서, 드디어 조조의 라이벌로 격상된다.
그 유명한 천하삼분지계도, 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천하를 만들어 천하를 늘리는 것'이라는 파격의 해석이 뒷받침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