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66회

등록 2007.04.04 08:12수정 2007.04.0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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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팍---!


정말 느닷없는 공격이었다. 저녁 해가 서산으로 기울 즈음인 유시(酉時) 말이었지만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되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며 걷던 모가두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가슴과 턱을 노리고 날아온 주먹에 황급히 상체를 비틀며 옆으로 몇 바퀴를 돌았다.

허나 상대가 누군지 파악할 새도 없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지면과 사각이 되어 회전하는 모가두의 허리를 향해 발길질이 쏟아졌다. 모가두가 팔목을 구부려 상대의 발길질을 가까스로 밀어내면서 급히 방향을 틀어 삼장이나 좌측으로 쭉 미끄러지며 상대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바닥에 발바닥 자국이 길게 그어졌다.

"호부(虎父)에 견자(犬子)인 줄 알았더니 역시 사나운 이빨을 감춘 토표(土豹, 시라소니)였군."

냉소를 치며 모가두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은 수석교두인 광나한 철호였다. 그의 뒤로 두 명의 교두들이 모습을 더 보였는데 모가두는 과장스럽게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들이오? 사람 잡으려고 작정했소?"


광나한에게서는 끓는 물이라도 얼릴 듯한 냉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시침을 떼겠다는 것이냐?"


갑작스런 환영교수(幻影巧手) 반일봉(潘馹鳳)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오전 내내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일봉이 아무리 보주의 제자라 하나 가장 뒤떨어진다는 모가두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었다.

또한 상만천에게 알리면 해결책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쪽 역시 아무런 연락도 없다보니 당황스러운 것은 광나한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떠한 조처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교두들의 시선에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고, 어차피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결론을 낸 것이 바로 한 시진 전이었다.

자신들을 이끌었던 철담 어른이 죽자 모든 것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신들은 분명 회에 속해 있었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상만천에게 기대고자 하였으나 철담 어른의 죽음으로 그 끈이 끊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허나 자신은 물론 교두들이 직접 나선다는 의미는 단순히 반일봉을 죽인 모가두를 어찌 하는데 그치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모가두는 보주의 제자였고, 그것은 보주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나 위험이 따른다 해도 광나한에게는 또 다른 의도도 있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 적당히 힘을 보여주면 회에서도 반응을 보일 것이고 그들의 입지가 굳건해질 터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동료의 죽음을 그냥 방치하기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오? 갑자기 나타나 무시무시한 나한권(羅漢拳)으로 때려죽이려고 들지를 않나? 시침을 떼지 말라고 닦달을 하지 않나? 내 아무리 못난 놈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이리 무시해도 되는 거요?"

모가두도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고함에 가까워 악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광나한은 저 자식이 왜 고래고래 악을 쓰는지 깨달았다. 누군가가 듣고 달려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지가 부러지고 난 뒤에도 네 놈의 입에서 그렇게 떠들지 봐야겠다."

시간이 없었다. 누군가가 저 놈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온다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모가두를 향해 쏘아갔다.

휙휙-- 파팟---!

그의 양 주먹이 무섭게 바람을 가르며 모가두의 얼굴을 연타해 들어갔다. 허나 모가두도 물러서지만은 않았다. 그 역시 정면으로 광나한의 주먹을 향해 쌍수를 휘두르며 맞섰다. 그의 손은 엄지와 검지는 약간 세우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굽힌 채 밀어갔는데, 그것은 마치 광나한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부드럽게 상대의 공격을 완화시키며 부딪치는 순간 막강한 타격을 가하는 무당의 면장(綿掌)과 흡사하게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퍼펑펑---!

주먹과 손바닥이 부닥치기 무섭게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공기를 찢고 있었다. 주위에서 흙먼지가 일어나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기선을 제압하려는 기세의 충돌이었을 뿐 아니라 서로 진력을 충분히 끌어올려 펼친 것이었기 때문에 진산내력의 충돌이기도 했다.

"으음---!"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분간 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신형이 한두 발자국씩 물러나며 떨어졌다. 허나 모가두의 신형이 조금 더 뒤로 밀린 것으로 봐서는 광나한의 내력이 조금 더 앞선 듯 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만도 없는 것이 공격해 들어온 사람은 광나한이었고, 막은 쪽이 모가두였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었다.

"사람들은 너를 잘 모르고 있었군. 나 역시도 너의 겉모습만 보고 보주의 제자임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광나한의 얼굴에 미세하나마 경악의 표정이 스친 것도 선제공격에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칭찬이오? 그렇다면 감사를 드려야 하겠구려."

모가두 역시 말은 장난치듯 하고 있었지만 내심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철담을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는 소문은 진실인 모양이었다. 일수를 교환한 후에 손과 팔에 느껴지는 충격이 적지 않았다.

"반교두가 실력으로 당했을 것이라 믿지 않았는데 실제 네 놈의 솜씨를 보니 능히 가능했을 것 같군. 하지만…."

말을 하면서 광나한은 진력을 돋우고 있었다. 가볍게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명년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임에는 변함이 없다."

광나한은 말과 동시에 신중하게 보법(步法)을 밟으며 모가두의 정면으로 다가드는 듯 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모가두의 좌측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모가두의 몸이 오른쪽으로 밀려나며 수도(手刀)로 광나한의 팔목을 내리쳤다.

허나 광나한은 이미 예상을 했던지 주먹을 빼내고는 어느새 손바닥을 펴서 오히려 모가두의 팔꿈치를 잡아채면서 몸을 유연하게 옆으로 눕히는 것과 동시에 왼손으로는 열려진 모가두의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헙!"

모가두의 입에서 짤막한 다급성이 튀어나왔지만 그의 몸은 빠르게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팔을 쭉 뻗었다. 동시에 왼손 역시 갈고리처럼 모양을 바꾸어 광나한의 팔뚝 뒤를 잡아채갔다. 그 뿐이 아니었다. 모가두의 쭉 뻗은 오른팔은 노리던 광나한의 목이 옆으로 비껴나가자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재차 귀 아래의 풍지혈(風池穴)을 노렸다.

광나한의 얼굴에 잠시 경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역시 모가두는 알려진 정도의 어설픈 놈이 아니었다. 역시 보주의 제자였다. 내심 이런 놈을 자신마저 감탄하게 할 정도의 인물로 키워낸 운중보주의 능력에 감탄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법이야!"

허나 광나한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는 옆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발로 모가두의 왼쪽 다리관절과 허리, 그리고 옆구리를 차는가 싶더니 머리까지 연속적으로 차올리는 것 아닌가? 소림의 비전각법(秘傳脚法)인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였다.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광나한의 발길질에 모가두는 꼼짝없이 당하는 듯싶었다. 내력이 실린 항마연환신퇴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어설프게 팔이나 다리로 막으려 해도 자칫 뼈가 부러져 나갈 터였다.

또한 피하고자 물러나거나 좌우로 움직였다면 더욱 더 위험한 지경에 빠질 터였다.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연환공격으로 타격을 주는 것이 항마연환신퇴의 묘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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