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독주, '왜곡된 이념시장'과 'TK 전략적 선택' 탓

[정치 톺아보기 154] 책 <17대 대선, 새로운 세력과 노선의 대충돌>

등록 2007.05.02 18:06수정 2007.05.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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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민주노동당 노회찬·심상정 의원의 예비후보 등록을 계기로 240여 일 간의 17대 대통령선거운동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거일이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선거구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시계(視界) 또한 안개 속이다.

우선 여야 모두 후보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16대 대선 때만 해도 당시 민주당은 2월부터 시작한 헌정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했지만, 범여권은 지금 후보군(群)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지리멸렬이다.

야당의 사정 또한 오십보백보이다. 여당의 분열로 제1당이 된 한나라당의 두 후보 지지도는 70%에 이를 만큼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두 후보는 몇 달째 경선을 위한 '게임의 룰'조차 정하지 못할 만큼 갈등을 빚고 있다.

더구나 임기말에는 '식물 대통령'이었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혈기 왕성한' 노무현 대통령은 예비후보들에게 개헌, 남북관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등 굵직한 정책적 쟁점에 대한 입장을 공약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대선 정국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제3후보, 제1후보 될 수 있을까

이처럼 '예선'이 불확실하니 정작 '본선'에 가서 누가 무슨 노선을 표방하고 어떤 세력을 모을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명색이 '여론과 정치'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면, 정세가 복잡하다고 해서 과학적인 판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기획하고 김헌태 소장과 정기남 부소장, 한귀영 수석연구위원(이상 KSOI) 그리고 고원 연구원(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등이 쓴 <17대 대선, 새로운 세력과 노선의 대충돌>은, 이 책이 내세우는 바대로 '2007년 오피니언 트렌트' 뿐만 아니라 '12월 대선과 그 후의 한국사회에 대해 알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을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해준다.


이를테면 이 책은 '제3후보는 제1후보가 될 수 있을까'라는 명제를 독자에게 던지고 이렇게 진단한다.

"현실 정치에서 제3후보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정치권 외부의 인사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제3후보가 기존의 정치세력에 영입되어 얹히는 방식은 생각보다 성공하기 어렵다. 스스로 권력의지를 갖고 정치권 진입 전에 대중적 행보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했을 때만이 현실성이 있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유력 대권주자들의 경쟁력 진단'에서 제3후보로 거론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해 "정 전 총장의 단점은 정치인으로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고 전제하고 "제3후보가 적극적으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국면을 만들어내고 돌파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나 정 전 총장의 경우 이 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물론 이 책은 정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4월 30일)을 하기 전에 출간되었다.

딜레마 속 호남 민심의 향배

"중도통합신당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명제 하에서 '딜레마 속의 호남 민심의 향배'를 진단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KSOI가 실시한 2007년 2월 6일 '열린우리당이 분당될 경우 지지정당'을 묻는 조사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64.6%가 '호남·충청을 중심으로 한 중도신당 세력'을, 16.3%가 '열린우리당 세력'을, 12.1%가 '시민사회 세력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 세력'을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런 수치로만 보면 집단탈당파들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은 호남지역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KSOI의 자체 여론조사결과에 대해 "특정 시점, 특정 상황에서 호남유권자들의 표층적 의식을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 근거는 이런 것이다.

첫째, 이런 여론조사결과는 수없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는 고도의 유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이런 호남 유권자들의 반응은 동일한 질문에 대한 전국 지지도 조사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셋째, 이처럼 범여권 세력이 분열되고, 호남에서의 지지율 양상과 전국적 지지율 양상이 서로 상이하거나 충돌되는 양상으로 나올 때 호남유권자들은 정치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호남유권자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적 에토스 구조

이 책에서 언급한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호남민심을 어떤 단일한 정체성(identity)이나 정향성(orientation)으로 규정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 이유는 호남유권자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적 에토스(ethos) 구조 때문이다. 호남유권자들의 이중적 에토스 구조를 설명해 주는 개념은 '고립에 대한 본능적 공포'와 '진보성'이다. 이 양자는 때로는 서로 갈등적이고, 때로는 상호작용적이다."

4·25 재보선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나타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과 김홍업씨의 당선 또한 이런 이중적 에토스(ethos) 구조로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 책은 '호남·충청지역 기반+중도·보수'로 가는 흐름과 '중도개혁·진보+시민사회세력'의 흐름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큰 범여권 구도 하에서 호남유권자들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에 대해 단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책은 호남유권자의 정치결정과정 분석을 통해 "호남유권자들은 결정적인 시점에서는 '범여권정당의 정통성'이나 '출신지역 정당으로서의 구성 및 이미지'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진단함으로써 선택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이런 암시와 진단이 이번 대선에서도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최근 호남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10%를 넘는 등 근본적인 정치지형이 변화될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여론조사라는 과학의 영역에서는 이런 개략적 전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명박 독주, '왜곡된 이념시장'과 'TK지역의 전략적 선택' 때문

이 책은 또한 '한나라당 주요 대권주자 분석'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지지도를 면밀하게 분석해,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누르고 독주체제를 굳히게 된 결정적 요인을 기존의 '강한 추진력'과 '경제를 잘할 것 같은' 이미지 말고도 '왜곡된 이념시장'과 'TK지역의 전략적 선택'에서 찾는다.

'왜곡된 이념시장'은 이명박이라는 상품이 실제와 다르게 '과포장'되었거나 이념시장에서 실제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물론 이 책이 구체적으로 '왜곡된 이념시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KSOI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시장은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한나라당 후보임에도 이념성향에 대해 '진보에 가깝다'는 응답이 54.7%, '보수에 가깝다'는 응답이 34.5%로 보수 쪽에 편중된 박근혜 후보는 물론 다른 범여권 후보들보다도 더 진보적인 후보로 평가받았다. 이로 인해 중도개혁층들이 대거 이명박 지지층에 편입되면서 초강세 지지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2006년 9월 이후 TK(대구·경북)지역의 지지도 변화추이에 주목해 호남유권자의 '전유물'처럼 간주되어온 '전략적 선택'이 TK지역에서도 이뤄졌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해 눈길을 끈다. 더구나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 검증 공방을 거치면서도 강세를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묻지마 투자' 양상을 띤다.

"영남, 특히 TK지역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으로 정권교체 열망이 높고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보수적 특성이 강한 만큼 보수적 색채의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강도가 높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겠다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06년 9월 이후 TK지역에서의 지지도 변화추이는 주목할 만하다. 북핵사태 이후 이명박 전 시장의 강세가 이어지며 대세론이 확산되자 TK지역에서의 박근혜 전 대표 지지도는 48.4%에서 19.5%로 급락한 반면, 같은 지역에서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도는 20.9%→29.0%→40.2%로 급등해 지지후보를 놓고 고심하는 이 지역의 표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KSOI가 정기적으로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조사해서 격주로 발행해온 <동향과 분석>의 4년간의 여론 데이터를 기본 자료로 해서 집필됐다. KSOI는 격주 간격으로 정당지지도 등을 비롯한 고정 항목과 조사시점에서의 이슈에 대한 시사적 항목에 대해서 전국적으로 평균 700 표본씩 90여회 조사를 진행했다(2007년 3월 기준).

이 책은 이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틀을 가지고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기적인 여론 조사를 통해서 얻은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2007년의 대통령선거 국면을 다각도로 진단한다. 이 책의 미덕은 대선 구도에 대한 중단기 전망을 넘어서 12월 대선 이후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적·이념적 대립의 실체까지를 선명하게 보여준 데 있다.

"한국에서 정치지형의 변화는 여러 정치집단들을 통해 '시장 대 공공성', '성장 대 분배', '개인 대 공동체', '작은 정부 대 적극적 정부', '집중 대 분권' 등과 같은 대립적 가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면서 보수와 진보가 각자의 헤게모니 영역과 그 지배관계를 사회구조 속에 각인시키려고 하는 '경계투쟁'을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거대담론의 깃발이 가두를 물결치던 '운동의 정치'는 끝났지만, 한국은 그 내면에서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정치구도의 등장을 예고한다.

"2007년 대선에서의 결정적 변수는 새로운 싸움의 영역이다. 그것은 삶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사회·경제적 비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영역에서 누가 불확실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느냐가 국민들의 대선화두가 될 것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국민들은 정당의 이념·노선·정책의 비전을 평가하고, 세력의 견고함과 안정성을 판단하고, 지도자의 용기·책임·능력·안정·자애로움·정직 따위의 리더십 자질을 측량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개혁 대 수구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진보 대 보수의 가치투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 새로운 가치투쟁의 장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로 ▲가치창출형 경쟁-합의모델의 구축 ▲공공성에 의한 정치구도의 재편 ▲정당체제의 혁신 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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