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들을 해방시켜주자!

뻔한 지시의 홍수 끝내야한다

등록 2007.05.03 11:46수정 2007.05.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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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간부의 자율성 보장


군부대가 전투 혹은 훈련 중에 지켜야 하는 준칙을 제시한 야전 교범에는 "지휘관은 부대의 승패에 관해 모든 책임을 진다"라고 씌어 있다. 부분적인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즉 무한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부하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큰 소리 질러 지휘하지 않는다. 하급 지휘관에 대한 지시 혹은 명령을 통해서 지휘한다. 무한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의 지시는 가능한 한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군단장→군사령관→참모총장은 모두가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로 명령지시하고 있다.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타이르는 것과는 다르다. 완전히 강제성을 지니고 있다.

중대장은 마치 절대로 실수를 묵인하거나 용서할 줄 모르는 6단계 위의 엄격한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들을 모시고 살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그런데 이 웃분들은 시할머니들과 달라 위로 갈수록 더 영향력이 세다.

시어머니의 참견이 없어서 힘든 며느리는 없는 것처럼 상급부대의 지시가 부족해서 힘든 중대는 없다. 윗사람의 지시가 없어도 잘할 수 있다면 사실 지시란 불필요한 간섭에 불과하다.


통상 상급 지휘관의 지시는 하급지휘관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현장의 여건 상태가 어떠한지에 관계없이 무작정 하달된다. 상급부대이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지시하며 위 부대로부터 지시받았기 때문에 다시 전달 지시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중대장은 지시의 홍수 속에 파묻혀 그야말로 정신 차릴 수 없이 바쁘게 허둥거린다.

상급부대의 끊임없는 지시는 예하 부대의 융통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하급부대 지휘관들은 사고가 나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중압감 속에서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지시를 처리 이행하기도 바쁜데 자신도 지시를 만들어 내려주어야 한다. 이런 행위를 충성심과 애국심 또는 직무에 대한 사명감이라고들 말하니 어쩔 수 없다. 그냥 지시의 포로가 되어 늘 지쳐 있는 것이다.


예하 부대에 하달되고 있는 지시의 내용을 살펴 보면 대부분 부대관리에 관련된 것들로서 '사고가 없도록 하라!'가 가장 많다. 총기 및 탄약관리방법, 사고사례 전파 등 빤한 내용이지만 그 양이 실로 엄청나다. 기타 작전과 훈련에 관련된 것들도 늘 되풀이되어온 내용들로서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의 전파가 아니라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온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범이요! 범!"의 우화처럼, 이미 비에 젖어 있는 사람은 소나기가 온다고 뛰지 않는 것처럼 중대장들은 하도 많이 받고 들어서 거의 무감각한 상태에서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사람은 하급간부 자신들이기 때문에 그런 지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중대장이 사고예방에 관한 지시를 이행했다고 해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이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시란 하급자의 권한은 박탈하면서 책임은 더 무겁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사고 내지 말라는 지시를 수없이 받은 자는 사고 책임에 더해서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 심한 경우 "예! 문제없습니다"라 했던 허위보고의 책임까지 져야 할 입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문제인 것은 사고가 났을 때 상급자의 입장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하 부대에 대해 책임추궁을 위한 근거확보가 되어 '권한은 위임하되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는 지휘통솔의 원칙에 크게 위배된다는 점이다.

조직원들이 윗사람으로부터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널 믿는다!'이며 가장 싫어하는 말은 '시키는 대로 해!'라는 불신의 태도다. 군에서 하달되는 지시 공문은 대부분 '시키는 대로 해!'보다 훨씬 강압적이며 공격적이다.

나의 졸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를 내놓았을 때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어느 육사출신 대대장으로부터 하급간부들의 자율성과 도전의식을 잠재우고 자신감을 훼손하고 있는 군대문화를 개혁하는 데도 관심을 둬달라는 부탁을 하며 위와 같은 하급부대의 딱한 현실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왔었다. 40여 년 전 내가 중대장할 때보다 더 숨 막히는 분위기임을 느꼈다.

그는 임기 내내, 대대장 스스로 판단하여 소신껏 진행하라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대장이나 소대장, 부 사관들은 말해 무엇하랴!

상급부대의 간섭만 없으면 오히려 부대가 더욱 진취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병영생활을 보다 명랑하고 활력 있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초급간부들은 가능한 한 상급부대의 간섭이 적게 미치는 부대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한다.

하급부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휘 서신이나 지휘관의 강력한 강조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상급부대 위주의 문화가 관습화 구조화되어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급부대 지휘관을 괴롭힐 뿐인 사고방지 강조 등 일체의 지시공문과 전문 등은 철폐해야 한다.

상급부대 참모들이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지도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예하 부대 방문도 정상적 조직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당분간 일절 금지해야 한다. 특히 각 부대별로 비교를 하여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예하 부대를 숨 막히게 하는 방법은 중단해야 한다.

장개석 군대가 광대한 대륙을 빼앗기고 조그마한 섬 대만으로 쫓겨 온 후, 뼈를 깎는 자기반성의 패인분석을 하여 얻은 결론의 핵심내용 중 하나가 바로 상급부대의 군림과 간섭으로 인한 하급부대의 자율성 상실 및 사기 저하였다. 그리하여 상급부대란 하급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을 확고히 정립하여 모든 예하 부대 방문을 철폐하고 고급간부 능력 판단의 주요 기준을 하급부대에 대한 실질적인 자율성 보장과 헌신적 지원 실적 여부에 두는 등의 대개혁을 단행하여 바람직한 군대문화 정착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리하여 대만 군대에서는 계급이 높아질수록 겸손하고 아래 사람에 대한 애정과 봉사의 정신이 뛰어난 분이라는 의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 군의 군대문화와 의식개혁 특히 간부훈육개혁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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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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