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들어라! 모두 엎드려라! 하늘님의 계시니라!”
유란의 목소리는 그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약간 쉰 목소리에 심한 떨림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아버지인 하달조차도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이가 유란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바로 ‘하늘님’ 그 자체였다.
“간라꿈 지롤져 스로도하오져 마다오셔라갸 로허도라......
유란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더니 맹렬히 몸을 흔들어 대었다. 어느덧 넓은 터 가운데 가득 몰려든 사람들은 그런 유란 앞에 엎드려 연실 손바닥을 마주쳐 비벼대었다.
“아 원통하다! 뉘라서 내 원수를 갚으리!”
우란의 목소리가 늙은이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하달의 옆에 있던 마악이 소스라치게 놀라 벌렁 뒤로 넘어졌다. 그 목소리는 땋은 머리 족속의 침입 때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후 십년 전에 죽은 하달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더러운 침입자들이 또 다시 우리를 노리는 도다! 하지만 지금도 그놈들의 힘에 미치지 못하니 어이할꼬! 어이할꼬!”
유란의 입을 빌어 절망적인 소리가 나왔지만 사람들은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진정한 하늘님의 계시가 내리기 전에는 조상들이 유란의 몸에 차례로 내려와 얘기를 해주는 게 순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구 이번 추수는 잘들 했어? 에이구 내가 그저 너희들 농사 잘되라고 비도 뿌려주고 그런 거 알아?”
이번에는 지난해 죽은 ‘에이구’ 할멈의 목소리가 유란의 입에서 나왔다. 에이구 할멈의 가족들은 그 목소리에 그리운 생각이 나 목을 놓아 울었다. 유란이 몸을 떨 때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뀌었고 그때마다 그들의 남은 가족들은 숙연해지거나 눈물을 훔쳤다.
“휘...... 휘...... 휘......”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유란의 말소리가 갑자기 잦아들더니 입을 모아 거세게 숨을 들어 마시는 소리만 계속되었다.
“엄마 저게 뭐하는 거야?”
어린아이의 물음에 아이의 엄마는 ‘쉿’하고 주의를 주었다. 유란의 행위는 온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하늘님이 유란의 몸에 접신하는 순간을 알리는 몸짓이었다.
“쉬이...... 흑!”
파르르 떨리던 유란의 몸이 멈추더니 발을 땅에 붙인 채 허리가 쑥 뒤로 넘어가 거의 뒤통수가 땅에 닿을 것만 같은 기묘한 모양새가 되었다. 다시 허리를 곧추 세운 유란의 눈동자는 검은자위가 마치 바늘로 찌른 듯 작아져 있었다.
“이놈들! 네놈들의 정성이 부족해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인데 이제 와서 날 불러내어 어쩌겠다는 것이냐!”
유란의 입에서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장로들조차 그 말에 혼비백산하며 고개를 깊이 파묻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아이고 하늘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적들을 물리칠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유란의 눈길이 사람들을 한번 쑥 훑어보더니 유란을 향해 손바닥을 비비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는 하달에게 멈추었다.
“네 이놈! 네 놈은 어찌 사람의 힘만 믿고 내게 정성을 드리지 않는 것이냐! 이 몸뚱이가 네 딸년의 것이라고 날 헛되이 보는 것이냐!”
“그런 것은 아니옵고......”
“네 이놈! 하는 짓은 괘씸하다면 네가 사람으로서 할 만한 방도는 다 했으니 그 정성으로라도 방도를 가르쳐 주마! 우선 당장 돼지를 잡아 마을의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성대히 제사를 치루거라!”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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