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양보 장사', 밑진 건 없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시군구 동시투표안은 '독' 혹은 '약'

등록 2007.05.15 10:11수정 2007.05.1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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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4일 오후 안국포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경선 룰의 핵심 쟁점인 여론조사 하한선 보장 조항을 양보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4일 오후 안국포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경선 룰의 핵심 쟁점인 여론조사 하한선 보장 조항을 양보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은 "수학적으론 손해지만 정치적으론 이득"이라고 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선룰 양보에 대한 평가다. 박희태 전 부의장은 이명박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인물로, 이명박 전 시장이 양보를 결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박희태 전 부의장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고 했다. "실리는 박근혜, 명분은 이명박"이 챙겼다는 다수 언론의 평가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중앙일보>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수학적으로는 손해... 정말 그럴까

'강재섭 중재안'대로 하면 당심과 민심은 '58 대 42'로 반영돼 이명박 전 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를 174표 차로 누르지만, '이명박 양보안'대로 하면 당심과 민심 반영비율이 61 대 39로 바뀌어 박근혜 전 대표가 717표 차로 역전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수학적으론 손해"라는 박희태 전 부의장의 말은 맞다. 하지만 아니다. <중앙일보>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얻어낸 게 적지 않다"고 했다.

이치는 간단하다. 이명박 전 시장이 여론조사 반영비율 하한선 조항을 포기했지만 230개 시군구에서의 동시투표안을 챙겼다. 바로 이 방안이 일반 국민 투표율을 끌어올릴 공산이 크다.


시군구 동시투표안 덕분에 국민 투표율이 30%에서 50%로 높아지면 이명박 전 시장은 1715표 차로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른다. 국민 투표율이 더 올라가면 그만큼 표차는 더 벌어진다.

이명박 전 시장은 밑진 게 거의 없다. "수학적으론 손해"라는 박희태 전 부의장은 말은 그래서 '엄살'에 가깝다.


"정치적으론 이득"이란 평가는 어떨까? 두 말할 나위 없다. '양보'하고 '결단'하는 지도자상을 보였다. 이미지 관리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분열을 바라지 않는 한나라당 지지층에 선명한 기억을 남겼을 테니까 당심의 변화를 기대해볼 만도 하다.

뿐만이 아니다. '경선 연기'라는 최악의 경우를 봉쇄했다. 속전속결의 토대를 닦음으로써 유동적 요인을 최소화하고 지금의 기세를 경선 결과에 반영시킬 수 있는 입지를 마련했다.

시군구 동시투표안, 독이자 약

a 지난 사흘간 `장고`에 들어갔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14일 수원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경선룰에 대한 원칙 고수입장을 재차 밝힌뒤 차에 오르고 있다.

지난 사흘간 `장고`에 들어갔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14일 수원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경선룰에 대한 원칙 고수입장을 재차 밝힌뒤 차에 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전 시장은 남는 장사를 했다. 이득의 양을 약간 하향조정했을 뿐이다. 이득을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한 게 결코 아니다.

그럼 박근혜 전 대표의 손익계산서는? 썩 좋은 건 아니다. 손해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리를 충분히 챙긴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 하한선을 무효 처리한 건 큰 성과이지만 230개 시군구 동시투표안을 받아들인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후발주자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의 실책을 유도하고 자기의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동시투표보다 순차투표가 낫다.

박근혜 캠프의 이규택 의원이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는 "동시경선 규정은 동원 선거를 가능케 하는 독소조항"이라며 "이를 무턱대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르게 볼 측면도 있다. 230개 시군구 동시투표가 '독'일 수도 있지만 '약'일 수도 있다.

원샷원킬... 장군-멍군이 오가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전망한다. 경선룰이 대충 매듭지어졌으니 이제 최대 변수는 검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상식적인 전망이다. 좀 더 구체화하자. 이 '상식'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한나라당은 검증위원회를 둬서 당 중심의 후보 검증을 실시하겠노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 방안은 평상시에 정상적인 의혹 제기가 있을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경우가 발생하면 검증위원회는 힘을 쓰지 못한다. 투표 직전에 메가톤급 폭로가 이뤄질 경우다. 다시 말해 230개 시군구에서 동시투표가 이뤄지기 직전에 그 누군가가 특정후보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비위 의혹을 폭로할 경우 검증위원회가 손을 쓰기도 전에 폭로 여진이 동시투표에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원샷원킬'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230개 시군구 동시투표다. 일반 국민의 투표율을 끌어올리겠지만 일반 국민은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 그런 일반 국민이 폭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높아진 일반 국민 투표율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셈을 할 단계가 아니다. 지금은 고지를 얻거니 뺐거니 하는 단계다. 장군과 멍군이 오가는 단계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명박 #박근혜 #경선 #시군구 동시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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