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크로드여 안녕~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46 마지막회] 톈진에서 인천으로

등록 2007.05.19 13:48수정 2007.05.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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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밤 고속도로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통관에 늦을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여행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여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다고나 할까. 차량 사이를 오가며 간식을 파는 이들이 이르기를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매일 밤 반복되는 현상이라 한다. 사고나 특별한 사고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교통체증이라는 것인데 그 원인은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거북이 걸음으로 한참을 지나 어느 목에 이르니 교통공안이 화물차들을 외곽도로로 유도하고 승용차만을 베이징쪽 고속도로로 빼내고 있다. 매일밤 반복되는 체증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다. 화물차의 시내 진입 시간 제한.

새벽녘 만리장성의 관광지로 유명한 팔달령을 넘는데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아, 이젠 눕고 싶다. 아내는 밤눈이 어두워 야간운전을 부담스러워 하고 교수님께선 베이징에서 내리셔야 하는 터라 아직은 혼자 버티는 수밖에 없는데,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비몽사몽인 가운데 드디어 베이징에 이르다. 기숙사에 들러 짐을 챙겨 내일 한국으로 들어가셔야 하는 교수님을 내려드린다. 톈진에서의 만남이 그러했듯 우리 이별 또한 별 준비 없이 치러졌다. 한 달이 훨씬 넘는 시간을 한 평도 되지 않을 백구의 차내에서 함께 했다. 함께 먹었고 함께 굶었으며 같이 덜컹거렸던 시간들…. 무사히 내려드렸다는 안도와 이젠 함께 하는 일정이 끝났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베이징을 벗어난다.

톈진을 향하는 도로에서 더 견디지 못하고 차를 세웠다. 어제의 수면부족과 오늘의 무리한 운행이 사정없이 눈꺼풀을 내리 누른 탓에 차가 차선 두어 개를 쉽게 넘나든 탓이다. 와락 무서움증이 일었다. 출국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 다행히 여명이 들 무렵이라 잠시 눈을 붙였던 아내가 운전대를 넘겨받는다.

부부라도 오랜 시간을 여행하다 보면 의견 대립도 있고 의가 상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인데 길다면 길었던 이번 여행에선 단 한 번 마음 상한 기억이 없다. 위험하고 고된 여정인 탓일까? 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매인 처지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의지와 신뢰가 더 깊어진 것 같다. 백구의 뒷좌석에 죽음처럼 몸을 뉘이며 입술 안으로만 웅얼거렸다. 당신이 옆에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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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톈진. 단 며칠의 인연이었건만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 오창학

정말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차는 어느새 톈진의 숙소에 들어서고 있다. 창밖으론 아침 기운이 훤하다. 아, 무사히 당도했다. 보람 있고 알찬 여행도 좋지만 제발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빌었던 기도의 뭉치를 뚫고 다시 출발점에 서 있다. 떠날 때처럼 우릴 반기는 샤마저우(下馬酒)는 없었지만 서로가 얼싸 안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사정상 일찍 귀국해야 했던 나리님과 새벽녘 헤어진 교수님의 부재가 훵하다. 나와 아내, 그리고 에릭님과 자포님, 그리고 철봉씨. 서로의 표정만으로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해냈는지 알겠다. 이제 나는 품었던 사막에 대한 꿈을 접고 일상에 매진할 수 있을까?

톈진항 해관에 들어가 차량을 입고시켰다. 서둘렀음에도 너무 빠듯하게 도착한 탓에 인천 가는 배편의 차량 선적 칸에 여유 공간이 없다. 별 수 없이 컨테이너에 넣어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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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 들어가는 백구와 파라곤. 먼 길을 함께했던 벗이 잠시 휴식을 취할 공간이다 ⓒ 오창학

해관(세관) 직원들이 차량과 적재품 검사를 하고 차량을 컨테이너에 넣는데 가슴 한 편이 묵근하고 눈이 뜨겁다. 수고했다. 백구, 그리고 파라곤.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 길을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함께 했던 시간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같이 달렸던 그 먼 길들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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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에릭님, 자포님은 차량과 함께 다시 배편을 이용해 귀국 ⓒ 오창학

다음날 철봉씨와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는 다시 쓰촨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내와 에릭님, 자포님은 선적된 차량과 차량이 선적된 배로 인천을 향할 것이고 난 출근일정 때문에 톈진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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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출근인지라 나는 서둘러서 비행기로. 땅에서 쏘다니다 구름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다. 돌아가기 때문인가? ⓒ 오창학

비행기 안. 마음이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도 난 저 구름들 밑을 쏘다녔는데…. 아니, 그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은 느낌. 이젠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에 대한 어색함. 무언가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비단 비행기에 실려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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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돌았던 흔적을 지워야 할 시간 ⓒ 오창학

떠날 때 25시간 동안 넘었던 바다를 돌아올 땐 2시간도 걸리지 않아 건넜다. 인천공항을 뜬 지 3시간이 안 되어 대전에 도착했다. 점심 때까지도 톈진이었는데 저녁 무렵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는 까닭에 미용실에 들른다.

근 40여일 가까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밀고 카슈가르 이후 어설퍼진 머리칼도 다듬는다. 일상을 벗어나고자 길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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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 오창학

나를 키운 건 8할이 여행. 길에서 많은 걸 배웠고 떠난 자리에서 원래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 한 번 생활인이 아닌 적이 있던가. '여행가', '여행 작가'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 난 언제나 생활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그러나 나 스스로 '생활인'의 범주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났을 때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여행이 일상이 되어서는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수염을 밀고 머리를 다듬는 15분만에 난 일상인이 될 준비를 한다. 사막의 먼지 내음과 바람의 느낌이 아직도 뇌와 심장에 가득한데 이렇게 쉽게 생활인이 될 준비를 마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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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에서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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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야영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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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호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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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배에서 아내가 찍은 서해의 갈매기 ⓒ 오창학

여행을 준비했던 지난 일 년 반, 얼마나 설레고 조바심 나던 시간이었던가.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행복했다. 길을 나섰던 지난 40여 일. 고되고 험했지만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환희로 가득했다. 이제 다시 생활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러나 준비 기간보다, 다녔던 시기보다,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이 여행의 기억을 곱씹으며 행복해 할 것이다. 다시 일상의 탈피를 소망할 때마다 말이다.

지긋지긋하면서도 매력적인 나라 중국이여 안녕, 나의 실크로드여 안녕~

덧붙이는 글 | 오늘로써 지난 2006.7.14일부터 8.21일까지 38박 39일간 제 차를 몰고 누볐던 14,000Km 실크로드 여정을 마칩니다. 그간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생생하고 유익한 정보를 엮은 단행본이 7월 중 출간될 예정입니다. 자동차 여행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지면을 통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늘로써 지난 2006.7.14일부터 8.21일까지 38박 39일간 제 차를 몰고 누볐던 14,000Km 실크로드 여정을 마칩니다. 그간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생생하고 유익한 정보를 엮은 단행본이 7월 중 출간될 예정입니다. 자동차 여행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지면을 통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실크로드 #자동차 여행 #탐험 #사륜구동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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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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