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결전 - 10회

두레마을 공방전 - 10

등록 2007.05.22 11:31수정 2007.05.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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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처얼이 어둠 속에서도 드러나 보일 정도로 휘둥그레진 눈을 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달의 팔을 붙잡았다.


“적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불까지 피우며 이렇게 당당히 다가오는 걸 보면 우리가 숨어있는 것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조용하던 두레마을의 목책 위에서도 하나 둘씩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당황하고 겁을 먹어 허둥거리며 목책위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소리하지마라. 기다려 보아라.”

하달은 여전히 변함없는 목소리로 처얼을 비롯한 장정들을 다독였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내가 지시를 내릴 때까지 경거망동해서는 아니 된다.”


땋은 머리족의 행렬은 도랑 앞에서 멈추었지만 짧게 끊어지는 함성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와! 와! 와!”


땋은 머리족의 함성 속에서 얼굴에 붉은 칠을 한 사내가 뛰어 나오더니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그러자 함성소리는 한번에 뚝 끊겼다.

‘저 놈은 그때 마을에 잠입했던 놈이 아닌가,’

땋은 머리족의 첩자에 불과하다고 여긴 이가 땋은 머리 족속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것에 하달은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지만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두레마을은 들어라! 난 너르족 족장의 아들 수걸이라고 한다!”

하달은 속으로 ‘너르족’과 ‘수걸’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너희 마을은 풍부한 양식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의 수는 적다. 반면, 우리는 사람의 수는 많으나 양식이 적다. 너희가 살고 있는 터를 합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니 부질없이 피 흘려 싸울 것 없이 문을 활짝 열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 어떤가?”

두레마을로서는 말도 안 되는 수걸의 주장에 욕지거리라도 내 뱉을 만 했지만 목책위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수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도랑을 앞에 두고 뒤로 조금씩 물러나더니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

함성소리와 함께 수걸은 한번에 펄쩍 뛰어 도랑을 넘어선 후 너르족들을 보고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너르족은 두레마을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이 함성을 질러대었다. 돌만 던져도 닿을 거리에 수걸이 뒤통수를 보이며 서 있었지만 목책위에서는 어떠한 대응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저런 바보들! 저걸 왜 가만히 두는가!”

하달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다시 움츠려들었다. 차라리 목책 위에서 방비를 엄중히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랬다면 하달 역시 제사를 지내느라 정신이 없었을지도 몰랐을 일이었다.

“나도 간다!”

수걸의 뒤를 이어 너르족의 장정들이 뒤로 물러서더니 힘껏 뛰어 도랑을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왁자지껄 웃으며 목책위에서 움츠리고 있는 두레마을의 장정들을 마구 비웃었다.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듯 도랑을 뛰어넘은 너르족의 장정들은 금방 십 수 명에 이르렀다.

“저 쪽으로 모두 조용히 이동한다.”

수걸과 그 부하들이 서 있는 곳은 하달 일행이 숨어 있는 곳에서 좀 더 이동을 해야 화살이 닿을 위치였다.

“그랬다가는 저들에게 우리 모습이 보입니다.”

처얼의 지적에 하달은 눈을 부릅뜨고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너는 저 야만인들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분하지도 않느냐! 이렇게 넋만 배놓고 있다가 저들에게 두레마을을 그냥 넘겨줘도 좋다는 것이냐! 젊은 것들이 어찌 이리 패기가 없단 말이냐!”

하달의 역정에 처얼은 뜨끔하여 푹 고개를 숙였다.

“잔말 말고 속히 나를 따라 오너라!”

하달은 활에 화살을 재며 수걸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맹렬히 달려 나갔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덧붙이는 글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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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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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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