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09회

등록 2007.06.07 08:14수정 2007.06.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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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한 각파의 제자들이 숙소 겸 개인적인 수련장으로 사용하는 연무원(鍊武院)은 건물을 네 개 붙여놓아 사각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 가운데 연무각(鍊武閣)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만천이 연무장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비무를 벌일 만한 공간은 연무각 밖에 없었다.


연무각은 꽤 큰 전각이어서 그 안은 백여 명이 동시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특이한 것은 벽을 막지 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열어 놓을 수 있도록 문처럼 만들어 놓아 쉽게 열고 닫도록 만들어 놓은 점이었다.

평상시에는 대개 이것을 활짝 열어놓아 안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진시(辰時) 말이 되어가자 모두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수생들은 평생 직접 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인물들이 속속 연무각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각 파의 장문인과 장로급 되는 인물들은 물론 상만천과 추태감까지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수석교두 광나한과 무적신창이라는 좌등의 숭무지례. 그들의 비무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안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란 연수생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시(巳時) 초가 되자 사방에 열려져 있던 네 개의 문마저도 닫혀버렸다.

연무각 안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지만 고요했다. 장문위는 아마 한 시진 반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행사 아닌 행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참석시키는 인물을 선정하는 일 조차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또한 자리배치는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허나 장문위는 아주 명확하게 자리를 배치해 놓았다. 주인이 되는 자리는 북쪽이었고, 그곳에는 세 개의 의자를 배치했다. 가운데는 보주의 자리였지만 비어져 있었고, 좌우로 중의와 성곤이 앉아있었다. 아직까지 운중보주는 오지 않았다.

장문위 역시 사부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부의 자리는 마련하는 것이 도리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좌우로 약간 거리를 두고 빈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우측에 놓여있는 의자 다섯 개에는 장문위와 모가두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장문위로서는 사제 모두를 위해 마련해 놓은 자리였지만 자신과 모가두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자신의 일행과 같이 앉아 있어 비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좌측에 놓여져 있는 다섯 개의 의자였다. 그곳에는 좌등과 진운청이 앉아 있었지만 나머지 의자는 비어 있었다. 허나 시선이 오늘의 숭무지례 장본인인 좌등에게 쏠려있어서인지 남은 자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미 올 만한 사람들은 모두 와 있는 셈이어서 특별히 신경 쓸 일도 없어 보였다.

그 반대편 남쪽에는 추태감과 상만천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추태감과 상만천은 바로 붙어 앉아 있었는데 가끔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것이 매우 사이가 좋아 보였다. 추교학 역시 추태감의 옆에 삼재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그곳과 약간 거리를 두고 교두 몇 명이 광나한 철호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서쪽으로는 육파일방의 인물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소림의 각원선사(覺元禪師)와 그 제자인 지광(智光)이 모습을 보이고, 그 우측으로 무당(武當)의 장문인인 청송자(靑松子)가 무당오검(武當五劍)을 대동하고 참석해 있다. 무당의 청송자는 매우 큰 몸집을 가진 인물이었다. 얼굴도 넓적하고 언뜻 보기에도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먼 호인(好人)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각원선사의 좌측에는 일행을 대동하지 않은 아미의 회운사태와 점창(點蒼)의 장문인 사공도장(四空道長)이 차례로 앉아 있었고, 약간 떨어져 화산파(華山波)의 장문인인 자하진인(紫霞眞人)과 화산칠검 중 네 명, 그리고 황용이 자리했다. 육파일방 중 빠진 곳이 곤륜(崑崙)과 개방(丐幇)이었다.

그들과 일장 정도 떨어진 곳에 삼합회의 회주인 단철수화 궁단령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모두 여자인 그곳에 냉소적인 기질과 함께 섬뜩한 음울함을 느끼게 하는 사내가 궁수유와 함께 앉아있어 유독 눈에 띄었다. 그의 독특한 기질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여인들의 틈에 유일하게 있는 사내라서 더욱 이목을 끄는 것 같았다.

또한 그들 한편으로 철기문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주인 옥청문과 동생인 옥청량, 그리고 옥기룡만이 참석했는데 실제 철기문의 단혁과 장로가 죽은 이후여서 이곳에 참석할 인물은 그들 세 사람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과 맞은편에는 함곡과 풍철한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당당히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을 만큼 대접도 받는 셈이었다. 이렇게 모이고 나니 지금 운중보에 들어와 있는 중요인물들은 거의 모인 셈이었다.

용추는 들어 온 순간부터 이곳에 잇는 인물들을 세밀하게 주시하며 계산을 튕기고 있었다. 이런 자리는 피아를 구분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이 숭무지례를 주관하는 장문위는 자리배치에 매우 고심을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쪽은 함곡 일행이었다. 천과의 말대로 생사판 종문천의 모습이 보였다. 일을 틀리게 한 것은 바로 저자일 터였다.

하지만 단정 짓기도 어려운 것이 함곡의 태도였다. 함곡과 눈인사를 주고받았음에도 함곡의 태도는 전과 다름이 없어보였다. 자신의 아내를 납치해 위협을 가하려던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도대체 알고 있는 거야… 아니야?'

용추는 함곡 일행을 유심히 살폈지만 전혀 알고 있다는 기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함곡은 물론 다른 인물들도 자신들의 일행보다는 오히려 육파일방이나, 삼합회 그리고 철기문의 인물들에게 더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사실 다른 인물들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다른 일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옆 사람과 나직하게 속삭이기도 하고 안면이 잇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큰소리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위기도 그랬지만 동정오우 중 성곤과 중의, 그리고 추태감과 상만천이 이 자리에 있는 이상 그들을 무시하고 큰소리칠 인물은 없는 것이다.

"……!"

장문위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위의 나직한 소곤거림이 일제히 멈췄다. 시선이 모두 장문위에게로 쏠렸다. 비무대를 설치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연무각은 본래 연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였기 때문에 굳이 설치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중앙 바닥에 정사각형의 금을 그어놓아 그 안이 비무장소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장문위가 천천히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숭무지례가 시작됨을 알리려는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삐이--익---

북쪽 문이 열리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너무나 조용한 가운데 들린 소리여서 장문위에게 쏠렸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역광을 받고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는데 무화의 부축을 받고 들어서는 인물은 바로 귀산노인이었다.

"너무 늦은 것인가?"

귀산노인은 중앙 쪽으로 나아가다 멈추어 자신을 보는 장문위를 향해 계면쩍은 웃음을 띠며 말을 건넸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많이 다친 모습이다.

"별 말씀을 이제 시작하려고 했던 참입니다."

귀산노인의 어색함을 덜어주려는 듯 장문위가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동시에 그는 한두 걸음 걸어와 좌등과 진운청이 앉아있는 곳에 놓여있는 세 개의 빈 의자를 가리켰다. 아마 그곳이 귀산노인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었던 것 같았다.

귀산노인은 무화의 부축을 받은 채 사방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결례가 되었으면 용서들 하시길… 몸이 불편하여 조금 늦었소이다."

헌데 그 때였다.

"아…!"
"흐음…!"

좌중에서 감탄이 섞인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화 뒤로 한 여인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머리는 양 갈래로 나누어 나비모양을 이루어 세웠고 가운데는 앙증맞아 보이는 주먹만한 화관을 꽂았다. 좌우 몇 올의 머리카락이 귀 앞으로 늘어져 가슴 양쪽으로 타고 내려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관에서 늘어진 구슬과 보석, 그리고 머리에 꽂은 장식이 햇빛에 비춰 반짝이고 있고, 금박으로 자수를 놓은 자줏빛 화복이 몸매의 굴곡을 파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우슬이 저런 의복은 입은 모습은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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