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은 컸으나 울림은 없었다

[태종 이방원 119] 자꾸만 커지는 민무구 형제 사건

등록 2007.07.09 08:22수정 2007.07.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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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大司憲) 이문화와 좌사간(左司諫) 박습이 깃발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민무구 형제 사건과는 색깔과 방향이 다르다.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작성된 살생부가 책갈피를 벗어나 현실세계로 나왔다. 이제 상생은 없고 어느 한 쪽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건은 임금도 제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신하들의 새로운 연루 사실에 대노한 태종은 이빈과 조희민을 순금사에 하옥하라 명했다. 현직 호조판서가 투옥된 것이다. 또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전라도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강사덕을 순금사사직(巡禁司司直) 심귀린을 보내 잡아오게 하고, 구종수를 개성유후사에 보내 김첨을 잡아오게 했다. 검거 열풍이다.

판순금사사(判巡禁司事) 남재, 이응, 성발도. 대사헌(大司憲) 이문화, 좌사간(左司諫) 박습, 형조참의(刑曹參議) 김자지, 위관참찬(委官參贊) 이지에게 명하여 교대로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심문관이 한성소윤 정안지에게 물었다.

"천추사가 되어 경사에 다녀올 때 요동에서 윤목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느냐?"

"'회안군은 그 공이 크고 민무구 민무질 또한 왕실에 공이 있는데 주상과 국가에서 대우하는 바가 잘못되었소. 민씨 형제가 공이 있는 친속으로서 귀양을 가게 되었으니 우리 같은 공신은 더욱 보전하기 어렵소. 주상의 여러 공신이 모두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정안지의 말이 틀림 없으렸다."

석연치 않은 사후 처리

심문관이 다그치자 윤목은 순순히 자복했다. 순금사의 보고를 받은 태종은 정안지에게 장 90대형에 처하라 명하고 조희민과 박강생 그리고 윤목을 석방하라 명했다. 공신에 대한 예우라 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윤목의 불충한 말이 이미 드러났으니 마땅히 다시 국문을 가하여 그 죄를 바루어야 합니다."

"농사꾼이 풀을 없애는 것은 곡식의 싹을 위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 악인을 제거하지 아니하고 조정에 섞이게 하십니까? 민무구, 민무질, 회안군의 무리가 밖에 늘어 있으니 반드시 공모하여 일어날 때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금 다행히 하늘이 그 단서를 열어 놓았는데 만일 베지 아니할 것 같으면 이것은 공신이 모두 모반하도록 시키는 것입니다."

이천우와 성석린 그리고 조영무가 강한 어조로 아뢰었다. 조정 밖에 반체제인사가 모반의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소상하게 조사하여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목의 말은 한담에 불과하다. 만일 다시 국문을 허락한다면 경등이 그 사정(邪正)을 분변하여 주모자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 내 어찌 일의 본말을 헤아리지 못하고 갑자기 정지하였겠는가?"

태종은 사건의 성격을 하찮게 받아들였다. 사니이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농담이고 한담(閑談)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나 마땅히 국문하고 대질해 사실을 가려야 합니다."

"일은 본말이 있으니 어찌 중도에서 폐할 수 있습니까? 만일 다시 국문을 허락하신다면 어찌 주모자를 찾아내기 어렵고 사정(邪正)을 분변하지 못함을 근심하겠습니까?"

이문화와 박습이 강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초사(招辭)에 관련된 공신은 반드시 명령을 품신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하옥하여 심문하라."

다시 시작된 국문

중단되었던 윤목에 대한 국문이 다시 시작 되었다. 윤목은 태종이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원평군(原平君)에 봉작된 인물이다. 이무의 추천으로 지합주사(知陜州使)가 되었으나 몽계사의 양곡을 횡령한 혐의로 탄핵받았다. 천추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 온 후 평양부윤이 되었던 사람이다.

심문관에게 신문 중에 공신이 거론 되거든 반드시 재가를 받아 인신을 구금하고 나머지는 투옥시켜 신문하라는 재량권을 주었다. 순금사 심문관이 물었다.

"이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죄다 말하라."

"내가 이빈의 집에 갔었는데 이빈이 말하기를 '민무질이 두 번이나 와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우리 형 여강의 말이 왜곡되어 유폄(流貶)되었고 나는 병권을 빼앗겼다고 말했는데 만일 그의 말과 같다면 민무질은 죄가 없고 그의 일은 중간에서 누가 잘못 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태종실록>

순금사 대호군(巡禁司大護軍) 목진공으로부터 국문 내용을 보고 받은 태종은 삼척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민무질을 불러와 대질 심문하라 명했다.

"비록 공신이라도 형문(刑問)을 면하기 어렵다."

실토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고문을 가해도 좋다는 뜻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형문이 시작되었다.

"이빈이 항복하기를, '윤목이 말한 뜻은 내가 말한 것인데 잊었다'고 하였으니 고문을 가하지 않더라도 정상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형조판서 이빈의 죄상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태종은 남재, 이응, 성발도, 이문화를 내전에 불러들여 이빈을 형문한 초사(招辭)에 대하여 자세히 물었다. 윤목의 초사(招辭)에 또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 이무와 강사덕, 김첨이 등장했다. 이무는 좌정승이다.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무는 송현에 있는 남은의 첩 집에 정도전 무리가 모두 모여 있다는 정보를 이방원에게 제공하여 정도전을 도모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여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한때는 정도전과 친교가 두터운 불충지당으로 지목되어 강릉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 방간의 난 때 공을 세워 좌명공신 1등에 책훈되었다.

"윤목은 비록 족질이긴 하나 일찍이 사감이 있었으니 옥(獄)에 나가 스스로 변명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무가 대궐에 나와 말했다. 스스로 심문관 앞에 나가 해명하겠다는 것이다. 태종은 사건에 연루된 이무를 좌정승에서 면직하고 그 자리에 이서를 임명했다.

사건에 연루된 좌정승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 이무는 별로 재주와 덕이 없이 두 번이나 훈전(勳典)을 입어 벼슬이 극품에 이르렀고 또 자질들도 화요(華要)한 벼슬에 포열해 있게 하였으니 부귀가 극진합니다. 비록 몸이 부서지고 뼈가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전하의 은혜를 갚기가 어려운데 도리어 난신과 결탁하여 죄가 불충에 있으니 그 실상이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대사헌(大司憲) 이문화와 우사간(右司諫) 박습이 상언(上言)하였다. 좌정승 이무의 죄상을 열거한 상소를 받아든 태종은 분노했다. 좌정승이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이 상소(上疏)는 대사헌 이문화가 초(草)잡은 것인데 이 글이 임금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되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남의 죄를 짜(羅織)서 만들었다."

이문화의 외침은 강했으나 울림은 작았다. 대세에 밀려 묻혀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되치기 당해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 호조판서와 형조판서가 투옥되고 좌정승이 하옥되었으며 사건을 앞장서서 끌고 가던 대사헌이 투옥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의 단초는 윤목의 초사(招辭)에서 비롯되었다. 형사사건에서 심문관의 신문에 죄인이 구술로 답변한 내용을 초사라 한다. 초사를 바탕으로 강도 높은 심문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자백한 봉초(捧招)도 아니고 이러한 과정을 두 번 이상 거친 갱초(更招)도 아닌 초사를 가지고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방원 #태조 #초사 #민무구 #봉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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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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