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상호불신·시민 희생·거리 질서... 중국이 넘어야 할 과제들

등록 2007.07.12 16:35수정 2007.07.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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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민들의 올림픽 참여를 독려하는 선전문구. 베이징의 번화가 중 하나인 우다오커의 모습이다. 간판에 써 있는 문구는 “올림픽을 맞이하여 문명을 진보시키며 새로운 바람을 심는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헌신하며 내가 즐긴다”이다.

시민들의 올림픽 참여를 독려하는 선전문구. 베이징의 번화가 중 하나인 우다오커의 모습이다. 간판에 써 있는 문구는 “올림픽을 맞이하여 문명을 진보시키며 새로운 바람을 심는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헌신하며 내가 즐긴다”이다. ⓒ 김종성

2008 올림픽을 1년 앞둔 베이징의 거리는 마치 분수처럼 어떤 활력 같은 것을 내뿜고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옷차림은 상대적으로 소박할지라도, 딱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중국인들의 온몸에서 발산되고 있다.

베이징의 활력을 더하는 요소는 지하철 대합실이나 길거리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올림픽 열기다. 베이징의 번화가 중 하나인 우다오커 거리에 있는 선전문구는 다음과 같이 시민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올림픽을 맞이하여 문명을 진보시키며 새로운 바람을 심는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헌신하며 내가 즐긴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순회해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활발한 건설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올림픽을 맞이하여 건물들을 새로 짓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베이징 지하철 13호선 시즈먼역 바깥에 있는 건설 현장이다. '13호선'의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2008년 올림픽에 거는 기대가 매우 높다는 점은, 베이징 거리에서 쉽게 부딪힐 수 있는 영어 열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어 학원을 선전하는 입간판이 눈을 유혹하는 순간, 팸플릿은 어느새 한 손에 들려진다.

또 지하철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부각됨에 따라, 마치 서울이나 도쿄처럼 지하철만 잘 활용하면 베이징 시내를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아직까지는 베이징 일부에서만 지하철이 개통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지하철 안내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도 어렵지 않게 시내의 주요 명소를 '나홀로' 여행할 수 있다.


이처럼 열심히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어떤 활력이나 신선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완전한 부국(富國)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대국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일정 정도는 감동을 줄 만하다.

그런데 2008년을 대비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물질적 준비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정신적 준비는 소홀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한 개인이 커다란 시험이나 행사를 준비하면서 얻을 수 있는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로 인한 외형적 성과보다는 내면적 성장일 것이다. 정신은 '빈 깡통'인 채로 외형적 성과만 추구하다 보면, 설령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겠지만 결국에는 피폐하고 공허한 스스로의 모습에 무상함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a 지하철 13호선 시즈먼역의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작업.

지하철 13호선 시즈먼역의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작업. ⓒ 김종성

서로 믿지 못하는 중국인들

외국인의 판단이라서 일정한 한계가 있겠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인들의 정신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인들 간의 상호신뢰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간에 상호불신이 크게 만연해 있다면, 그런 큰일을 함께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고 또 설령 성공한다 하여도 그것이 국민통합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도시에서 상호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은 치안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청년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왕바(피시방)에서도 상호신뢰 부족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중국의 왕바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베이징 시내 곳곳의 왕바에서는 컴퓨터 본체에 철로 만든 커버를 씌운 뒤에 자물쇠로 채워놓은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원 버튼을 누를 손가락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다. 마치 컴퓨터에 중국식당 '철가방'을 씌운 다음에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만큼만 구멍을 뚫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USB 디스크 같은 것은 원칙상 컴퓨터에 꽂을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왕바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의 작업밖에 할 수 없다. 한국 영사관 직원과 한국인 유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베이징의 왕바는 다들 그렇다고 한다.

왕바 몇 곳을 돌아다녀 보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느 대학 앞에 있는 왕바에 가서 "USB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직원이 열쇠를 갖고 와서 커버의 잠금장치를 푼 뒤에 USB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 직원이 30분 내내 필자의 컴퓨터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USB에 저장된 문서를 꺼내서 작업하는 동안에, 그 직원은 주변을 계속 서성거리면서 '해방된 컴퓨터' 쪽에 관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직원이 걱정하는 것은 혹시라도 컴퓨터 본체에 있는 부품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부품을 절도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베이징 시내의 왕바들이 대대적으로 잠금장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도범 하나를 경계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불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왕바들이 아직은 기업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중국사회의 상호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업체가 재산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처럼 삭막하게 컴퓨터를 보호하는 걸 보면서 베이징에 상호불신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화합해서 올림픽을 준비해도 부족할 판에 이처럼 서로를 불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a 기존의 낡은 주택들이 철거되고 아파트가 건축되고 있는 베이징 시내의 모습. 도시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존의 낡은 주택들이 철거되고 아파트가 건축되고 있는 베이징 시내의 모습. 도시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종성

시민 희생 위에 세워지는 건물들

둘째, 중국정부는 올림픽 준비를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일종의 생존권 희생을 가하고 있다. 앞에서 베이징의 건설 열기를 언급한 바 있듯이, 지금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는 올림픽에 대비한 건설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대규모 철거작업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주택가 철거과정에서 '일정 정도'의 '강제성'이 가미된 모양이다. 베이징에 있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정황을 들었다. 서울 달동네에서 깡패들이 서민들을 몰아내는 모습이 갑작스레 연상되는 건 왜 그런 걸까.

한때는 주요 사회주의 국가였던 나라가 이제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 못지않게 더 살벌해지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을 위한 올림픽이 인간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 베이징 시민들의 질서의식은 이 도시가 과연 세계적 규모의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중국에서는 차로가 차로가 아니다. 사람과 차가 함께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 불인데도 건너는 보행자, 파란 불인데도 달리는 자동차.

요란한 경적소리 소리에 사람과 자동차가 한 데 뒤엉켜 있는 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교통사고가 걱정되기보다는 참으로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베이징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교통질서가 더욱 더 엉망이지만 말이다.

시즈먼역 앞의 인도를 '걷고 있는' 자동차는, 차로를 '달리는' 보행자들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걸까.

이런 무질서를 계속 관찰하다 보니, 그 속에서 일종의 질서 같은 것을 나름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국 보행자들은 신호등 불빛에 관계없이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모험'을 강행하는 것 같다.

빨간 불이 커져 있더라도 자동차가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거나 혹은 자동차와 보행자의 거리가 10미터 정도가 되거나 하는 등의 '절호의 기회'만 포착되면, 그냥 사정없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튼 이런 무질서를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2008년 베이징 거리가 어떨지 자못 궁금하기만 했다. 외국인들이 중국인들을 흉내 내다가 혹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하고 중국정부는 올림픽 기간 16일 내내 초조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a 차도에서 사람과 자동차가 한 데 뒤엉켜 있는 우다오커 거리.

차도에서 사람과 자동차가 한 데 뒤엉켜 있는 우다오커 거리. ⓒ 김종성

a 시즈먼역 앞의 인도를 ‘걷고’ 있는 자동차.

시즈먼역 앞의 인도를 ‘걷고’ 있는 자동차. ⓒ 김종성

넷째, 늦게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고 후발 자본주의국가인 중국은 여느 선진국 못지않게 배금주의에 빠져 들고 있는 것 같다. 미혼 남녀의 재력과 직업을 소개하는 TV의 중매 프로그램은 보는 이의 어안을 벙벙하게 할 정도다.

또 일부 중국 단체들은 외국인들의 중국 방문으로부터 돈을 더 벌기 위해 외국 단체나 기관과의 계약을 마음대로 파기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 여행에 대한 협조를 대가로 외국으로부터 선금을 받은 다음에는 마음대로 계약 조건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국과 외국 간의 계약 중 많은 부분이 중국어로 체결된다는 점을 활용해서 계약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강요하거나, 혹은 계약이 구두로 체결되거나 설령 문서로 체결되었더라도 강제성이 결여된 경우에는 계약 이행 중에 마음대로 조건을 바꾸기도 한다.

다른 때는 대국처럼 행동하다가 막상 돈 앞에서는 소국이 되고 마는 중국의 모습이 다소 싱거울 정도다. 중국인들 상호간에는 약속을 열심히 지키는지 몰라도 외국인들과의 약속은 가끔씩 마음대로 깨기도 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2008년 베이징에서 외국인들이 중국 사람들을 신뢰하며 올림픽을 편하게 즐길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지하철 1호선, 2호선 다음은 13호선?

다섯째, 중국인들의 과장도 가히 일품이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지하철공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일종의 허풍이 나타나고 있다. 개통된 지하철은 모두 세 개인데, 지하철은 13호선까지 있다. 1호선, 2호선 다음에 곧바로 13호선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는 지하철이 세 개밖에 없으면서 13개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3호선부터 12호선까지 미리 만들었어야 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13호선이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어딘가 궁색하기만 하다.

외국인들에게 신뢰를 주고 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르려면, 작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상대방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큰돈'을 버는 방법은 지속적으로 신뢰를 주는 것이다. 한 번 잘 보여서 '떼돈' 벌 생각을 하기보다는 정직함과 솔직함으로 차근차근 신뢰를 축적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점은 어쩌면 불필요한 잔소리일지도 모른다.

a 베이징 지하철의 노선도. 빨간 줄이 1호선, 파란 줄이 2호선. 노란 줄이 13호선이다.

베이징 지하철의 노선도. 빨간 줄이 1호선, 파란 줄이 2호선. 노란 줄이 13호선이다. ⓒ 김종성

지금까지 언급한 것 외에도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인 및 베이징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의 정신적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나치게 물질적 준비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신적 인프라의 구축은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다운 정신적 면모가 부족한 것이다. 물질적으로 커다랗고 많은 것만 추구하다 보면, 그 준비를 통한 정신적 성숙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

외형상으로는 국가나 도시가 주도하지만, 올림픽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는 일이다. 고득점만 추구하고 인성은 제로인 수험생에게서 실망밖에 느낄 수 없듯이, 올림픽을 통한 경제적 성장에만 관심을 둘 뿐 정신적 성숙은 외면하고 있는 중국과 베이징의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들이 2008년 베이징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화려하고 멋있는 건물보다는 인간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외국 여행에서 값비싼 음식보다는 사소한 친절 하나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는 것처럼, 베이징 사람들의 인간적이고 따스한 정신이 세계인들에게 분명 더 많은 감명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올림픽은 인간의 육체보다는 인간의 정신을 단련시키는 것이고, 진정한 올림픽은 정부나 엘리트 선수보다도 일반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닐까. 겉만 화려하고 물질적인 올림픽보다는 속이 알차고 정신적인 베이징 올림픽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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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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